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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30. 2020

식혜에서 찜질방 한 잔?

뜨끈한 찜질방에서의 살얼음 동동 뜬 식혜가 그리운 요즘.

“아. 찜질방 가고 싶다.”     


점심을 먹은 후 아내는 기지개를 켜면서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아이들까지 가세해서 찜질방 성토대회가 열렸다. 아내는 불가마에서 땀 빼기, 첫째는 깔개 위에 누워서 원 것 게임하기, 둘째는 살얼음 동동 뜬 식혜 먹기를 각각 희망했다. 나는 찜질방보다도 펄펄 끓는 탕에서 삼계탕처럼 푹 고았으면 좋겠다. 어제, 저녁 먹다가 필 받아서 맥주를 네 캔이나 마셨더니 골이 지끈거렸다. 이럴 때 가면 숙취도 모두 풀릴 텐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목욕탕에 가지 못한 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었다. 몇 번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겁이 났다. 혹여나 하는 마음이 발을 묶었다.     


목욕탕을 떠올리니 어릴 때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집 근처에 목욕탕이 생겼다. 가운데 파란색 타일로 된 네모난 모양의 온탕이 있었다. 옆에는 둘러앉아 때를 밀면서 가운데 조그만 탕 속에서 물을 받아 바로 몸을 씻을 수 있었다. 지방에 계셨던 아버지는 집에 오면 꼭 목욕탕에 데려갔다. 사실 좋기도 하면서 두려웠다. 유도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힘이 장사셨다. 때수건을 뜯은 후 그 안에 수건을 넣곤 얼마나 박박 밀던지 입에서 곡소리가 났다. 다 밀고 나면 온몸이 화상 입은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는 오란 씨를 꼭 사주셨다. 아버지가 때를 밀 동안 옆에 앉아 병 속에 기다란 빨대를 넣고 쪽쪽 마시면서 물놀이를 했다. 고무 대야 속에 비누와 수건을 넣고 찬물을 가득 넣으면 뽀얀 거품이 보글보글 나왔다. 그 안에 손을 넣고 만지작거리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금도 목욕탕 하면 아버지가 먼저 떠오른다. 자주 볼 수 없던 시절, 그곳을 지나면서 그리움을 삭히곤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가 발칵 뒤집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말썽을 도맡았던 7반 민수와 그 일당이 주말 저녁, 여탕을 엿보다 순찰 돌던 경찰관에게 붙잡혔다는 소식이었다. 걸린 이유도 일당 중 한 명이 창살과 건물 사이의 비좁은 틈 사이로 들어갔다가 껴서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여탕을 볼 수 있다는 곳은 남학생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들 겁이 나서 실천하지 못했던 것을 민수와 그 일당은 시도한 것이다. 모두 정학 처분을 받았다. 학교 망신시켰다고 선생님들께 어찌나 구박을 받던지. 그 뒤로 목욕탕은 전면 보수에 들어갔고, 이야기는 두고두고 전설로 남았다.     


동네 목욕탕은 중학교 때까지 성황을 누렸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부터 인근에 대형 사우나가 하나둘 생기더니 손님이 급격히 줄었다. 사우나는 온탕 외에 보석탕, 쑥탕 등 다양했고, 수영장만 한 냉탕에는 거대한 폭포수가 떨어졌다. 처음 갔을 때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가족도 비슷한 가격의 좋은 시설을 갖춘 길 건너 사우나로 점차 발길을 돌렸다. 결국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목욕탕은 문을 닫았다.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괜스레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추억의 한 조각이 문을 닫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찜질방이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단순히 목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쉬고, 놀고, 먹을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었다. 그 당시 기사에 할아버지들이 옷을 다 벗고 찜질방에 들어갔다가 뒤늦게 들어온 아줌마가 발견하고 기겁했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처음 친구와 갔을 때 우리도 옷을 입고 나가는 건지, 아닌지 헷갈렸었다. 무사히 찜질방에 안착했지만,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몰랐다. 친구는 오래 있어야 좋다고 했다. 불가마의 뜨거운 공기를 견디며 1시간이 넘도록 그 안에 있었다. 더는 못 버티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현기증으로 쓰러질 뻔했다. 탈수 증상으로 물은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 친구는 화상까지 입었다. 한동안 무서워서 근처도 못 갔다. 점차 익숙해지면서 친구들과 종종 가며 정을 쌓았다.

    

아내를 만나고선 둘 다 찜질방을 좋아해서 연애 때부터 자주 다녔다. 결혼해서도 주말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갔었다. 다행히 아들과 딸이 태어나 각자 맡으면 되니 찜질방 다니기도 수월했다. 오전에 가서 TV도 보고, 찜질도 하고, 점심도 먹고 하면 어느새 저녁이 다 되었다. 별다른 준비 없이도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좋은 휴식처였다.       

  

오늘같이 몸이 찌뿌둥한 날이면 목욕 가방에 때수건, 샴푸, 칫솔을 바리바리 챙겨 아이들 손 잡고 가면 딱인데. 코로나가 흔한 일상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욕실에 욕조라도 놓을 걸 그랬다. 아내는 아쉬운 마음에 근처 가족탕을 열심히 검색하다가 걱정되었는지 그만두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제일가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찜질방이다. 오늘은 아쉬우나마 뜨거운 물에 오래도록 샤워를 해야겠다.


어서 빨리 찜질방에 가서 살얼음 동동 뜬 식혜에 삶은 계란도 먹고, 몸에 쌓인 묵은 때도 싹싹 벗기는 그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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