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번 헐크로 변하는 그녀

어서 빨리 브루스 배너 박사로 돌아오길

by 실배

찌릿.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아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심장이 마구 쪼그라들었다.

재택근무라 집에서 업무를 보던 중 아내의 카톡 지령이 떨어졌다.

미션 1. 냉동고에 있는 대패 삼겹살을 냉장고로 옮길 것.
미션 2. 냉장고에 있는 삼계탕 팩을 꺼내 데워 놓을 것.

업무를 종료하고 첫 번째 미션을 수행했다. 아내가 올 무렵은 두 번째 미션을 진행 중이었다. 냄비에 물을 붓고 팔팔 끓인 후 삼계탕 팩을 넣어 데웠다.

"여보. 팩을 통째로 넣으면 어떡해. 안에 비닐이 있어 얼마나 몸에 안 좋은데. 정말이지...."

억울했다. 분명 설명서에 나온 대로 했을 뿐이다. 그러나 아내의 성난 얼굴을 바라보며 직감적으로 그 날임을 깨달았다. 안 그래도 어제저녁, 몸이 붓고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얼른 팩 속에 닭과 햅쌀을 꺼내 다른 냄비로 옮겼다. 그리곤 아내를 도와 저녁 준비를 했다.

아내는 밥 먹는 동안 신기한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온화한 표정을 짓다가 금세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드라마 '두 얼굴의 사나이'에서 부르스 배너 박사와 헐크를 보는 것 같았다. 그냥 가만히 있어야 했다. 어리석게도 분위기를 바꿔 보겠다고 말을 걸다가 결국 함구령이 떨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둘째와 함께 운동을 하기로 했었다. 아내는 갑자기 속이 불편하다고 밖에서 걷고 싶어 했다. 그래. 이럴 땐 빠져주는 거야. 둘째도 중간에서 눈치만 살폈다. 나는 둘째에게 내일 운동을 하자고 했더니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엄마에게 달려갔다.

따릉이를 타고 1시간 정도 안양천을 돌았다. 수능 날은 어김없이 추웠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과학이 아닌가. 집에 돌아와 보니 첫째만 있었다. 노트북을 켜고 밀어둔 글을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내와 둘째가 나타났다. 슬쩍 아내의 표정을 보니 한결 편한 듯 보였다. 다시 서점을 간다기에 슬며시 물었다.

"나도 책 볼 것 있는데, 같이 가도 될까?"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는 아빠, 엄마와 함께 간다고 기뻐했다. 걷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전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다행이다. 둘째도 왼손에는 아내, 오른손에는 내 손을 잡고 신나게 걸었다.

아내의 그 날은 점점 강도가 세지고 강한 통증을 동반했다. 그에 비례에서 감정의 높낮이도 컸다. 나야 옆에서 지켜볼 뿐인데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돌처럼 옆에 있는 것이다.

좀 더 눈치가 빨랐으면 좋으련만 늘 한 템포가 늦는다. 한 끗 차이가 못내 좁혀지지 않는다.

앞으로 일주일간 아내는 고통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브루스 배너 박사로 돌아오겠지.

한 달에 한 번 낯선 그녀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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