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탐.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겠지.

by 실배

어제저녁 테이블에 앉아 책을 있던 중 아내가 둘째를 데리고 운동을 다녀오라고 했다. 먹성 좋은 둘째는 최근에 살이 많이 쪘다. 아내와 나는 그만큼 걱정이 늘었다. 먹는 것을 줄이는 것은 힘드니 운동이라도 시켜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가려는 준비를 마쳤는데, 첫째가 보였다. 워낙 집돌이라 집에만 있다 보니 얼굴이 하얗게 떴다. 운동 가자고 꼬셔도 도통 꿈 적도 안 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데리고 가리라는 마음으로 강하게 푸시했더니 마지못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오늘 코스는 이번에 새로 단장한 공원이었다. 어릴 때 아이들 데리고 자주 갔었는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함께 걸으며 좋은 것은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야 워낙 조잘대니 가만있어도 되지만, 이제 막 사춘기의 터널로 진입한 아들은 밖에만 나가면 말이 없다. 그뿐이랴. 한두 발자국 멀찍이 떨어져 걷는다. 목덜미를 붙잡고 내 쪽으로 간신히 소환했다.

둘이 옥신각신하던 중,

"아빠는 행복해?"

훅하고 치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했다. 그럭저럭이란 답 뒤에 폭풍 하소연이 쏟아졌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학원, 친구들도 못 만나는 상황이 불행하다고 했다. 그중에서 으뜸은 학원이었다. 하긴 매일 밤늦도록 공부하는 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전 같으면 주말에 친구들 만나고 스트레스라고 풀었을 텐데 내내 집에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좋아하는 게임도 규칙을 어겨 아내의 금지령이 떨어졌다. 그저 묵묵히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바깥공기의 영향일까. 한바탕 쏟아낸 덕인가. 첫째 얼굴이 조금 나아졌다. 새로 단장한 공원은 신선하고 좋았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이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늘었다. 크게 한 바퀴 돌던 중 첫째는 용케도 어릴 때 놀았던 공간을 기억해주었다. 마스크를 쓴 체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 모습을 애잔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마치 텔레파시처럼 아무 말 안 해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몇 바퀴 돌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시간이 다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빵 카페에 들러 빵순이 아내가 좋아하는 크루아상과 크림치즈 먹물 빵을 샀다. 메뉴는 첫째가 아내에게 전화해서 물어봐주었다.

한 손에는 둘째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비닐봉지를 흔들며 앞서가는 첫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불쑥 커버린 키만큼이나 늘어난 고민 속에 성장을 느꼈다. 삶의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는 것이 슬프기는 하지만 그 또한 어른으로 가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과정이겠지. 나도 그랬으니.

가끔이라도 첫째를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도 시킬 겸, 마음도 염탐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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