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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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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Apr 28. 2021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다시 돌리도.

오빠 생일 축하해. 오늘 100번 웃는 날이 되길 바랄게~!


얼마 전 생일을 맞이해서 지인 카톡방에서 생일 축하 메시지가 전해졌다. 그중 한 친구가 위와 같이 100번 웃음을 강조했다. 나도 재미로 몇 번 응대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짓궂음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란 것을 간과했다. 수시로 나의 웃음을 묻기 시작했다.

하루 만 보 기도 아니도, 백 번을 웃어야 한다니. 자세 교정을 위해 놓아 두었던 거울을 쳐다보고 웃어보았다. 아..... 어색하다. 얼른 거둬들였다. 지인들도 하루, 이틀 재밌어하더니 슬슬 흥미가 떨어졌는지 더는 강요를 안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하루에 몇 번이나 웃을까. 오전에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밀리 서류 처리를 하느라 웃을 여유가 없었다. 점심때 산책을 하면서 동료와 시답잖은 농담 하며 세 번 정도 살짝 웃었다. 오후에는 깜박한 통계자료를 챙겨준 김주임에게 고맙다는 미소를 보냈으니 이것도 한 번으로 넣어야지. 오후에 과장님께 사업 보고하다가 말이 막혔다. 민망한 웃음으로 넘겼다. 그래. 이것도 인정하자. 야근 때문에 사내 식당에서 밥 먹고 돌아오며 선배의 코인 망한 이야기에 두 번 정도 희미하게 웃었다. 퇴근 후 문을 열자마자 딸이 달려와 뽀뽀를 해 주었다. 이때는 찐 웃음 재대로였다. 옆에 있던 아들이 뒤에서 옆구리 간지럼을 태웠다. 앗. 강제 웃음 발광을 했다. 씻고 나와 아내와 잠시 이야기했다. 이때는 뭐..... 가만있자. 그럼 도합 9번이네. 휴. 하루에 10번 웃기도 힘들구나.


강릉책문화센터에서 메일이 왔다. 이번에 <강릉은 모두 작가다>에서 발간하는 책에 실릴 글과 어울리는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어릴 때 아버지와 강릉에서의 추억 사진이 좋을 듯했다. 창고 구석에 넣어 둔 옛날 앨범을 꺼냈다. 아니 이럴 수가. 사진마다 나는 웃고 있었다. 그것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뿐 이던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맞아. 나는 이렇게 웃음이 많았던 사람이었어. 살짝 건드려도 샘물처럼 터져 나왔다. 아. 세월이여.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이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웃을 수 없다. 살짝 미소만 지어도 안면 근육이 찬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떨렸다. 나는 웃음 고x가 되어 버렸다.


더 슬퍼지기 전에 다시 앨범을 뒤적거렸다. 그 안에 나는 세상 행복한 사람이었다. 사진 속으로 들어가고픈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찾을 수 있으려나. 안되겠지?


그때로 다시 돌리도. 플리즈.



매거진의 이전글 <강릉은 모두 작가다>에 글이 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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