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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수컷 한 마리가 몹시 거슬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by 실배

어두운 수컷 한 마리가 거실을 어슬렁 거린다. 나를 발견하곤 고개를 까닥거리고 바로 방으로 사라진다. '삑' 소리 나는 기계음을 들은 듯 몹시 거슬린다.


요즘 퇴근하면 마주하는 첫째와의 일상이다. 얼마 전 둘이 스파크가 빠직하고 튄 뒤론 내내 그렇고 그렇다. 연휴 기간 캠핑 가서 풀어 보려 했다. 탁구를 치며 나에게 약점인 백 쪽으로 집요하게 공을 보내는 모습을 보곤, 단단히 삐쳤음을 깨달았다. 둘이 있는 시간, 말을 걸라치면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금세 어디론가 사라졌다. 실상 말을 했어도 잔소리로 갔겠지.


첫째가 삐짐 지점은 무언지 얼핏 알겠다. 혼난 것보다도 핸드폰 사용 시간이 줄어든 것이 크다. 아내와 상의해서 일부 유튜브 시청 금지와 인터넷 이용 시간을 확 줄였다. 더구나 몰래 가지고 있던 공신 폰도 압수했다. 마음 안에는 용암보다 뜨거운 불이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풀어줄 마음도 없다. 물러서면 안 되니깐.


어린 수컷과 나이 든 수컷 간의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전능했던 아버지보다 덩치도 커지고, 힘도 세졌음을 인지했을 때 전과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도 그 시선을 느꼈던 것 같다. 폭발, 그리곤 어색 불편, 종국엔 서로 조심 단계로 정리되었다. 그럼 이제 둘 간에 네모난 틈이 생겨 조심하는 일 만 남을 것인가.


슬쩍 문을 열고 무얼 하나 보았더니 핸드폰에 코를 받고 낄낄대고 있다. 분명 인기척을 느꼈을 텐데, 투명인간 취급이다. 머쓱해서 문을 닫았다.


당분간 이런 관계는 계속될 것 같다. 불편해.... 몹시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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