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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Dec 29. 2021

저만치 놓아두었던 웃음을 꺼내볼까

늘 밝은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

매일 아침 양배추즙을 주시는 분이 계시다. 오시면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꼭 한두 마디 농담을 주고받는다.


"에고. 계장님. 머리 자르셨나 봐요?"

"네. 시원하게 잘라 보았어요. 어때요?"

"밤톨 같아요. 호호호"

"이거 도로 가져가세요."

"에이 농담이에요."


피곤한 하루의 시작을 웃음으로 시작할 수 있어서 좋다. 얼마나 센스가 좋은지 전날 술을 마신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서 슬쩍 헛개수즙을 주머니에 놓고 가고, 눈이 침침해 보인다며 아로니아즙을 서비스로 주기도 했다. 이제는 언제 오실까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그 분과의 인연도 꽤 오래되었다. 6년 전 처음 본사에 왔을 때, 며칠 되지도 않아서 책상 위에는 여러 종류의 건강 음료가 쌓였다. 그냥 보아도 3~4곳에서 두고 가신 듯했다. 그중 몇 분은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셨다. 그때만 해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안 먹겠다고 했음에도 한사코 두고 가셨다. 그러다 끝까지 설득한 이분을 선택했다. 그다음 날 귀신같이 다른 음료는 사라졌다. 그렇게 한 2년간 건강을 챙겨 주셨다.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픈 자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 같지 않은 어두운 얼굴을 비쳤지만, 이내 괜찮다며 특유의 밝은 표정을 지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부터 무거운 짐을 끌고 부지런히 다니며 곳곳에 밝은 에너지를 주는 모습에서 삶의 자세를 배웠다.


다시 본사에 발령 나서 왔을 때도 가장 먼저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번엔 내가 먼저 음료를 신청했다. 평소에 속이 많이 쓰리다고 했더니 양배추즙을 추천해 주셔서 2년 넘게 꾸준히 먹고 있다. 그래서인지 속도 많이 편해졌다.


오늘 새벽부터 눈이 왔다. 처리할 일이 있어서 일찍 출근했는데, 앞에서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분을 보았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더니 환하게 웃으시며 이따 보자고 하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중에도 어떤 농담을 주고받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삶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퍽퍽한 현실을 마주하면 쉽사리 어두워진다.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웃음을 저만치 두고 지냈는데, 잠시 꺼내어 옆 동료에게 나눠줘 볼까. 그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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