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사춘기 아들과 둘이서 독서 모임을 했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사실을 목도하다.

by 실배

며칠 전부터 가족들에게 독서 모임을 계속 알렸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 식사를 마친 후 독서 모임을 하자고 하니깐 아내는 책을 읽지 못해서 참여를 못하겠다고 했다. 딸은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도원결의를 해놓고서는 아내 따라 불참을 선언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 밑에서 몹시 뜨거운 기운이 머리까지 차올랐다. 정수기에서 차가운 물을 받아 들이켰다. 그제야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들밖에 없었다. 요즘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함께하며 사이가 무척 좋았다. 테이블에 앉아 유튜브를 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기분도 썩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 순간 다정한 얼굴로 속내를 조금 드러냈다. 하지만 이내 눈치를 채고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들, 오늘 둘이 독서 모임 하자."

"응? 해야 돼? 엄마랑 동생도 없잖아."

"그러니깐 둘이 해야지. 할 거지?"

"음.... 알았어."


올레. 대신 10분 뒤에 하자고 하길로 무조건 알겠다고 했다. 이럴 땐 최대한 비위를 맞춰야 한다. 시간이 되자 아들은 약속대로 책을 가져왔고, 나는 간식으로 호떡을 준비했다.

내가 준비한 책은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이었고, 첫째가 준비한 책은 만프레트 마이가 지은 '세계사'였다.

먼저 최은영 작가에 대한 소개를 했다. 책 표지 안에 적힌 수상 내역도 알려주었고, 젊은 나이임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작가임을 강조했다. 그리곤 줄거리를 설명했다.


줄거리


주인공 지연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한 후 직장을 옮긴다. 그곳은 회령이란 시골 마을이었는데, 그곳에서 외할머니를 만난다. 어릴 때 잠시 같이 산 경험이 있었지만 그 뒤론 소식을 끊고 지냈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차츰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 할머니의 초대로 집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자신과 닮은 증조할머니 사진을 발견한다. 그리곤 증조할머니와 새비 아주머니로부터 이어진 100여 년의 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아들의 질문거리

첫 번째 질문 :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이었나?

- 지연이 할머니 집에 가서 증조할머니 사진을 발견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자신과 닮은 증조할머니 모습에서 긴 시간이 흘러도 반복되는 운명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마도 작가가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그 장면을 넣지 않았나 싶다.


두 번째 질문 : 할머니는 그 사람과 결혼한 이유는 무엇인가?

- 우선 아버지가 그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한 이유가 크고, 그 시대만 해도 스무 살이 넘으면 일찍 결혼을 했다. 할머니도 직감적으로 그 사람이 겉으론 좋은 사람인척해도 속으론 아닌 것을 알았지만, 딱히 좋아하는 상대도 없어서 그냥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어릴 때 동생처럼 같이 자란 명숙 할머니가 대학도 가고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반대 심리도 작용한 듯하다.


질문이 끝나고 이제 아들 차례가 되었다. 먼저 나에게 목차를 보여주며 최초의 인간부터 기후변화까지 과거와 현재 모두를 다룬 책이라고 했다. 전체를 모두 설명할 순 없으니 그중에서 미국이 강대국이 된 이유, 산업혁명에 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줄거리

미국이 강대국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헌법이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부터 생명의 자유, 행복 추구권 등이 이에 속한다. 헌법을 만들기 위하여 의회를 소집했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하원과 의원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유명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탄생하였고, 미국 헌법은 1789년에 시행되었음에도 몇몇 조항만 바뀌었을 뿐 현재까지 핵심은 변하지 않고 효력이 유지되고 있다.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농경 문화와 정착 생활이 시작된 이래 인류의 삶을 가장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기계를 통하여 인간의 일손을 덜어주었을 뿐 아니라 어떤 분야는 인간의 노동력이 아예 대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인류가 발전하게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빠의 질문거리


첫 번째 질문 : 여러 이야기 중 가장 재밌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 산업혁명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인류가 큰 발전을 하게 된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반면에 일손 부족으로 농경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실업자로 몰리는 등 빈곤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공장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각종 질병과 전염병에 노출되어 살아야 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은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도 모두 지니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두 번째 질문 : 책에서 소개된 시대 중 갈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

- 히틀러가 지배하던 독일로 가고 싶다. 그곳에서 유대인은 아니고 평범한 독일 사람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이유는?) 전쟁도 있었고, 가까운 이웃이 유대인이란 이유로 잡혀가는 등 불안정한 사회였을 것 같은데, 그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갔는지 궁금했다.(만약 그때 친한 친구가 유대인이라서 찾아와 숨겨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 많이 될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안 된다고 할 것 같다. 금방 탄로 나서 나 역시도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짜 그때로 간다면 어찌 될지는 닥쳐 보아야 알 것 같다.(나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겉으로는 도와준다고 했지만, 나 역시도 그때 상황이 되면 어떻게 행동할지 단언할 수 없었다.)


소감

아들의 소감 : 아빠와 둘이 해서 살짝 그랬지만, 나름 재밌었다. 아빠가 소개한 책은 왠지 어려울 것 같아서 읽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가 깊이 있다는 말은 어떤 뜻인지 알 것 같다.


아빠의 소감 : 아들과 둘이서 독서 모임을 했는데, 생각보다 집중을 잘해주어서 고마웠다. 이렇게 둘이서 하는 모임도 즐거웠고, 기회가 되면 나중에 둘이서만 독서 모임을 또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아들과 둘이서 가족 독서 모임을 진행했다. 하자는 말을 꺼내긴 전, 안 하겠다는 답을 예측했지만, 생각보다 쿨하게 참여해서 놀랐다. 더구나 눈도 잘 마추치고, 고개도 계속 끄덕거리며 대답도 잘하는 등 경청의 자세를 보였다. 그리고 진지한 모습으로 질문도 잘 했다. 다른 가족들과 있을 때는 늘 소극적이더니 새로운 모습이었다. 가끔 이렇게 둘이서만 독서 모임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다른 모습을 발견한 것도 기뻤고, 또 한편으로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에 둘이 사이가 좋으니 이번 모임도 가능했던 것 같다. 한창 사춘기라 늘 좋을 수는 없지만, 요즘만 같았으면.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늘 느끼지만, 독서 모임은 언제나 정답이다. 이러니 내가 안 하고 배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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