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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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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Sep 18. 2022

못생기지 마. 슬프잖아.

가속페달을 밝으며 못생김으로 달려가는 중

"옆머리는 짧게 쳐주시고요, 나머지는 다듬어주세요. 많이 자르진 않을 거예요."


상세히 주문을 하고 '사각사각'소리에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한참을 꾸벅꾸벅 졸던 중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 다 되었습니다."


눈을 떴다. 그리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놀라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옆머리는 귀 위로 한참 올라갔고, 그 위로 마치 새둥지처럼 짧은 머리가 자리했다. 분명 다듬어달라고 했건만. 이 무슨 천지개벽할 일이란 말인가. 예전에 드라마 속에서 순수한 영혼으로 나왔던 호섭이가 떠올랐다.

대략 이런 느낌

충격에 흔들리는 다리는 부여잡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 최대한 정돈을 한 후 옆에 있던 딸에게 물었다.


"아빠 머리카락 잘랐는데 어때?"

"음.... 아빠는 그냥 머리가 긴 게 난 것 같아."


딸은 당황한 듯 동공이 흔들렸지만 최대한 아닌 척했다. 가뜩이나 살도 많이 찌고, 관리가 안된 상황에 머리카락마저 난감함을 더했다.


그날 저녁에 오래간만에 친한 선배와 약속이 있었다. 수원으로 가서 남문을 한 바퀴 돌고 소주 한잔을 하기로 했다. 최근에 통 보지 못했었는데, 다행히 연락이 되었다.


이제 9월 중순으로 가는 완연한 가을이건만. 날은 여전히 습하고 더웠다. 그나마 저녁이 다되어 걸을 만은 했다. 산보를 마치고 남문 시장으로 가서 순대볶음에 시원한 막걸리를 마셨다.

얼큰히 취하고 옛 추억 이야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선배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는,


"실배 선생, 이제 보니 왜 이리 늙었냐. 그래도 예전엔 봐줄 만했는데. 그러지 마. 슬프잖아."


눈물이라도 똑똑 흘릴 듯 진심 어린 얼굴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래요. 선배. 저 이제 늙고 못생긴 중년 아재예요.'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진실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술에 취한 선배의 무한 반복되는 못생김 타령에 귀에 딱지라도 생긴 듯했다.


새해부터 3kg 살을 빼겠다는 목표를 세웠건만 잔인하게도 단 1g라도 빠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쪘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마다 왜 이리 배가 나왔냐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원래도 얇았던 머리카락이 올해 들어 유난히 가늘어지더니 중심부가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외적인 모습이 전부는 아니지만, 가속 페달을 밟으며 못생김으로 급격히 달려가는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나이 들어도 자기 관리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아 속상했다. 단순히 외모가 빛나기보다는 나에 관한 끊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이제 다시 운동을 시작해보려 한다. 점심때 걷기는 꾸준히 하고 있지만 그걸로 부족했다. 주 2회 정도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뛰기로 했다. 살을 빼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틈틈이 마스크 팩도 하며 피부도 가꿔야겠다. 아직 올해가 석 달이나 남았다.


연말쯤에는 배도 홀쭉하니 들어가서 더는 주변에서 측은한 눈빛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못 할 일이 무엇이 있으랴. 분명 해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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