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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Oct 03. 2022

바다 닮은 친구, 산 그리고 목욕탕

종일 기분 좋은 파도가 쳤던 날

나에게는 좋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떠올리면 한없이 넓은 바다가 떠오른다. 따스히 공감도 잘해주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었다. 그래서일까. 오래간만에 연락을 해도 어제 만난 듯 친근했다. 가을이 찾아오는 이 맘 때쯤이면 가까운 산에 갔었다. 코로나가 이어지고, 친구 또한 몸이 좋지 못하여 몇 년간 가지 못했다.


최근 통화에서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래도 아직 높은 산은 무리 일 듯해서 관악산 둘레길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그리고 휴일의 첫 날인 토요일에 우리는 만났다. 친구는 당뇨 전조 증상으로 몸 관리를 하느라 눈에 띄게 살이 빠졌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가장 마른 상태라며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모습에 왜 이리 마음 짠한지. 등산로 초입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단히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둘레길로 향했다.

예전에는 짧은 둘레길만 있었는데, 군데군데 데크가 놓이며 새로운 길이 생겼다.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계속 가면 석수역까지도 이어진다고 했다. 끝까지 가고 싶었지 친구가 집까지 너무 멀어지기에 중간에 경치 좋은 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드넓게 펼쳐진 풍경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집에서 챙겨 온 간단한 간식과 함께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셨다. 신기하게도 산에서는 무얼 먹어도 맛있었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강을 챙기라는 나의 잔소리에 알았다며 다시 웃음을 지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더는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어느새 등줄기로 흐르던 땀이 식었다. 우리는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가는 길에 이른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장소를 고민하다가 정했다. 바로 신림동 순대타운이었다. 예전에도 산에 내려오면 종종 갔었던 곳이었다. 도착하니 1층에는 사람이 바글대서 2층의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순대볶음 2인분에 술을 시켰다. 전 같으면 술을 많이 마셨을 텐데 건강을 위해서 소주 한 병만 시켰다. 요즘은 술을 많이 마시기보단 이렇게 좋은 사람과 한두 잔 하는 것이 좋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우리가 만나 다시 산에도 가고, 술도 마실 수 있음이 감사하다고.

두둑이 배를 채우고, 마지막 코스인 목욕탕에 갔다. 코로나 때문에 감히 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는데, 친구가 있기에 용기를 냈다. 천 원을 내고 각자 때수건도 샀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그간 덕지덕지 붙었던 피로가 모두 날아갔다. 냉탕도 가고, 건식과 습식 사우나실에도 들어가며 제대로 목욕을 즐겼다. 중간에 돌바닥에 누웠는데 그새 살짝 잠이 들었다. 마무리는 때밀이였다. 사이좋게 서로의 등도 밀어주며 묶을 때를 벗겼다. 아. 정말 오래간만걸. 너무 좋아라.


목욕을 마치고 전철역 앞에서 친구는 정말 좋았다며 다시 웃음을 지었다. 훅하고 바다 내음이 났다. 그리곤 앞으로 종종 오자고 했다. 그럼 말이라고.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꼭 오자꾸나.  


바다 닮은 친구를 만나서인지 돌아오는 길, 내 안에 기분 좋은 파도가 계속 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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