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딸이 번갈아가면서 가족독서모임을 언제 하냐고 물었다. 심지어 기말시험을 앞두고 도서관에 갔던 아들은 문자를 보내서 집에 오면 저녁 8시쯤 되니깐 그때 꼭 하자고 했다. 딸은 저녁에 해야 할 숙제가 있음에도 미루고 모임부터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먼저 나서는 독서모임이라니. 얼마나 이상적인가. 하지만 실상은 용돈의 힘이었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면 용돈을 주겠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아이들의 태도가 '소극'에서 '적극'으로 변했다. 아무렴 어떠랴. 나는 모임을 해서 좋고, 아이들은 용돈을 받아서 좋으니 서로가 윈윈이었다.
책은 마니또 선물로 받은 강현민 작가의 그림책 '도롱뇽 꿈을 꿨다고?'였다. 표지부터 침대에 아이와 도롱뇽이 나란히 앉아 체스를 두는 장면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등 범상치 않았다.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작가소개를 먼저 했다.
강현민 작가는 동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직접 취재를 통해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수 그림책과 만화를 발표해 왔다. 전작 『사뿐사뿐 따삐르』 의 판권이 프랑스, 미국 등 해외에 수출되었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그림책 작가였다.
그는 서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양서류를 굉장히 좋아해서 어릴 적 키우다가 죽어버려서 너무 미안했어요. 지금은 연못에 가면 관찰만 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두 문장만으로도 짐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도 공감되었다. 어릴 때 곤충학자가 꿈이었던 나도 여러 곤충을 키우려다가 죽어버린 일이 많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호기심이 불러온 참사였다. 모두 소중한 생명이었는데. 작가는 꿈에 자주 나타난 양서류를 그린 이야기책이란 글로 소개를 마쳤다.
그림책은 큰소리로 소리 내어 읽어야 제맛이었다. 슬쩍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더니 역시나 강하게 반발했다. 내가 아이도 아니고 더구나 그림책을 어떻게 읽냐, 생각만 해도 오글거린다며 손사래를 쳤다. 내가 모임장이고 용돈도 주는데 그것도 못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다다랐지만 강한 인내심으로 참았다. 좋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모두 읽겠다고 했다.
왼편에 꿈에 관한 짤막한 글과 오른 편엔 그 글을 묘사한 그림이 있었다. 그린 자국이 보일 정도로 다소 거친 표현 안에 화려한 색감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옆에서 아이들은 그림이 멋지다며 감탄했다. 도롱뇽에 관해서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그림에 더욱 압도되었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특히 꿈속의 꿈 이야기에서는 아들이 본인 경험을 개방했다. 예전에 풍선 안에 들어 있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풍선이 터져 놀라서 깼더니 그 역시 꿈이었다. 신기한 마음에 나중에 깨서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나와 딸은 아직 그런 적이 없어서 신기했다. 딸은 나중에 꼭 경험해 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런데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려나.
책을 다 읽고 도롱뇽 이름이 특색 있어 혹여나 작가의 상상 속 창조물일 줄 알았는데 실제 존재해서 깜짝 놀랐다. 피파개구리, 나무개구리, 마늘두꺼비, 호랑이도롱뇽 등 검색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에 유치하다는 듯 바라보던 아들도 어느새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녀석. 그럴 줄 알았다.
꿈이 주제라 나눌 이야기가 풍성하리란 기대가 들었다. 몇 가지 질문을 나눴다.
질문거리
질문 1. 책 내용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꿈은 무엇인가?
딸 : 아기 꿈이다. 납작한 피파개구리 등 위에서 아기 개구리가 나오는 장면이 징그러우면서도 신기했다. 아까 아빠가 피파개구리를 검색했을 때 진짜 등 위에 알 주머니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새끼들이 태어나는 것이 사실이어서 놀랐다. 작가가 그 장면을 포착해서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 나는 엉망진창 꿈이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 내용을 썼는지 궁금했다. 통상 그림책에는 분명 숨겨진 의미가 있는데, 이 꿈에 관한 이야기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나는 다시 한번 글을 읽어 주었다. 두꺼비들이 다투는 걸 말리다가 그 사이에 껴서 숨 막혀 죽을 뻔했는데 알고 보니 짝짓기 하려다가 잘못 끼었기 때문에 엉망진창이란 표현을 쓴 것이 아닌가라며 있는 그대로로 설명했지만 고개를 계속 갸우뚱거렸다. 그럼 본인이 생각하는 의도는 무엇인지 물었더니 그 역시 답을 하지 못했다. 요즘 한창 성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때라 혹여나 그런 의미로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아빠 : 자장가 꿈을 골랐다. 아기 도롱뇽이 옹기종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평화롭고 부러웠다. 요즘 갱년기인지 자다 가도 수시로 깬다. 그래서 늘 피곤하다. 누가 옆에서 머리도 토닥여주고, 자장가도 불러준다면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둘째는 아내에게 부탁을 해보라는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기에 그저 웃었다.)
질문 2. 현재까지 꾼 꿈 중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꿈이 있는가?
아들 : 비슷한 꿈을 반복해서 꾸고 있다. 좀비에게 쫓기는 꿈이다. 계속 도망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더는 숨을 곳이 없는 순간 좀비가 덮치고 꿈에서 깬다. (혹시 요즘 불안한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도 같다고 했다. 특히 학원을 다니던 때 꿈을 자주 꿨다고 했다. 꿈은 현실을 반영하니 그 꿈이 심해지면 꼭 말해달라고 당부했다.)
아빠 : 나는 두가지가 있다. 먼저 20대 중반에 꾸었던 꿈이다. 로또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매주 한 명씩 당첨자가 있었다. 부러운 모습으로 바라보다가 선생님이 불러서 가보니 내가 당첨자라는 것이었다. 4절지 정도 되는 종이에 여덟 자리 번호가 적혀있었다. 당첨금이 무려 40억이었다. 친구들이 주변을 둘러쌌고 나는 우쭐한 마음에 있다가 잠에서 깼다. 잠을 깬 후에도 그 번호가 생생하게 기억났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로또를 사지 않기에 친한 친구에게만 이야기했더니 만 원을 주더니 꿈을 팔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당첨되지 않았다.(아이들은 옆에서 사지 그랬냐며 몹시 안타까워했다. 심지어 둘째는 지금도 번호가 기억나냐고 물었다. 설마.) 두 번째는 결혼 한지 꽤 오래된 친구가 아이가 없었다. 어느 날 꿈에 친구를 만나러 산 밑에 있는 집에 갔더니 제수씨만 있고 친구는 없었다. 제수씨는 배가 불러 임신한 상태였다. 성별을 물었더니 남자라고 했다. 꿈에서 깬 뒤 곧바로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꿈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었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 아닌가. 임신 초기라 아직 말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나는 성별을 알려주었는데 나중에 태어난 아이가 남자아이였다.(아이들은 정말이라며 계속 물었다. 사실이라고.)
딸 : 아빠가 죽은 꿈이었다. 아빠랑 같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데 중간에 어떤 사람이 탔는데 이 00이란 유명한 정치인이었다. 신기하게 바라보았는데, 내려서 우리를 어느 사무실에 데려갔다. 공장 같기도 했는데 방이 여러 개 있었다. 알고 보니 고문실이었다. 아빠는 그곳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가 결국 죽었다. 나는 도망가서 살기는 했지만 너무 슬펐다.(이야기가 갑자기 죽음으로 향했다. 아들에게 아빠가 죽으면 슬픈 것 같냐고 물었더니 묘한 답을 했다. 당연히 슬픈데 눈물이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감정이 메말라 눈물이 나지 않는다나 뭐라나. 옆에서 둘째가 엄마한테 혼나면 울지 않냐고 반문했더니 슬픔과 억울함은 다르다며 향 변했다. 하긴 슬퍼서 운 걸 본 적이 없으니 그럴지도.)
소감
딸 : 꿈에 관한 그림책도 흥미로웠고, 직접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점도 재밌었다. 꿈은 그냥 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재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들 : 그림책은 분명 그 안에 의미가 담겨있다고 믿는다. 이번에 나눈 책을 읽으며 내가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시간 되면 다시 읽으며 그 의미를 찾고 싶어졌다.
아빠 : 무엇보다도 독서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어서 고마웠다. 용돈보다는 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리라 믿는다. 오늘 나눈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흥미로웠고, 책을 통해 다양한 꿈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11월 가족독서모임을 무사히 잘 마쳤다. 용돈이란 유인책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독서모임에 참여해서 행복했다. 그림책을 선물받는 순간 독서모임이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직접 해보니 나에게 올 운명이 아니었나 싶다. 꿈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심리적 이론도 있듯이 아이들과 다양한 꿈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것이 많았다.
이제 다음 달에 올해 마지막 가족독서모임이 남았다. 그때는 아내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해 독서를 마감하는 의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선정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아야지. 우리의 모임도 결산할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