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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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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an 13. 2023

슬램덩크, 비단 3040의 전유물만이 아닙니다

아들이랑 함께 보러 간 영화...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의 힘

"아빠 나랑 영화 보러 가자!"


도통 무얼 먼저 하자고 제안한 적 없던 아들이 갑자기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서 놀랍기도 하고 무얼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번에 슬램덩크 극장판이 개봉했어. 나는 엊그제 친구랑 보고 왔는데, 아빠도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친구랑 이미 보고 왔으면서 나랑 또 보러 가자니. 핸드폰을 켜고 예고편도 보여주며 몹시 흥분했다. 평소 감정 표현이 인색한 아들이 저럴 정도면 무언가 있음이 분명했다. 다음 날 저녁 시간으로 예매했다.  


그때였다.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카톡방에 슬램덩크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미 보고 왔다는 친구도 있었고, 혼자 보러 가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오가는 대화 속에 고등학교 시절 우리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네 글자 '슬램덩크'와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기억 속에 오래 묻어두었던 '슬램덩크'란 4글자

▲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카톡방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카톡방이 슬램덩크 이야기로 들썩거렸다. ⓒ 신재호

처음 슬램덩크 만화책을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당시 농구 인기는 절정이었다. 현주협의 고대와 서장훈의 연대의 치열한 연고전뿐 아니라 실업 농구팀의 허재, 이충희의 농구대잔치 등 TV를 켜면 선수들의 뜨거운 땀과 열정이 화면 밖으로 뛰쳐나와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했다.    


그 열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슬램덩크였다. 카톡방에도 있었던 친구 A가 처음 반에 만화책을 가져왔다. 그 당시 만에도 생소한 이노우에 다케히코라는 작가가 농구 선수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긴 했다.  


처음엔 반에서 소수의 몇몇만이 관심을 가지고 보았었는데, 나중에 일파만파 퍼져서 거의 반 전체 학생이 A를 둘러싸고 그의 손가락에 집중했다. 사실 이야기는 단순명료했다. 사고뭉치 강백호가 우연한 기회에 북산고 농구팀에 들어가게 되어 좌충우돌하며 조금씩 농구에 진심이 되어가는 과정이 큰 줄거리였다. 각자의 매력이 넘치는 채치수, 정대만, 서태웅, 송태섭 등 동료들과 함께 자신보다 강자였던 팀들을 물리치는 통쾌함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백미였다.  


우리는 만화책을 읽고 나면 흙먼지 풀풀 날리는 운동장으로 달려가 농구를 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데 각자 만화 속 캐릭터에 동화되어 슛도 따라 하고, 상황극도 연출했다.

▲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한 장면             ⓒ 에스엠지홀딩스(주)

'놓고 온다'거나, '왼손은 거들 뿐' 등 명대사도 빼놓지 않았다. 30도가 훌쩍 넘는 여름에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뙤약볕에 나가 농구 하다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가 어머니께 등짝 스매싱을 당하기도 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차츰 기억 속에서 흐릿해질 무렵 우연히 TV에서 만화 영화로 만들어진 슬램덩크를 다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보았는데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농구 장면도 그저 그랬고, 특히 중간에 흐름이 자주 끊겨 집중하기 어려웠다. 결국 몇 편 보다 말았다. 그 뒤로 취업, 결혼, 육아 등등 현실의 삶 속에서 치여 슬램덩크는 아예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었다.  


슬램덩크는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였다

▲ 더퍼스트 슬램덩크 극장판 아들과 함께 본 더퍼스트 슬램덩크 극장판. 오래간만에 추억 여행을 다녀왔다. ⓒ 신재호

아들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극장으로 이동했다. 30분 전에 도착했음에도 이미 극장 안은 사람들도 바글댔다. 놀아왔던 건 비단 내 또래의 중년 남성뿐 아니라 어린아이들, 젋은 남녀, 심지어 중년 여성들도 여럿 보였다. 영화를 보며 같은 장면에 웃고, 우는 모습에 슬램덩크가 비단 3040 남성의 전유물만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그 이유는 이야기 안에 있었다. 기존 만화 속에는 담겨있지 않았던 숨겨진 사연들이 드러나고, 농구뿐 아니라 가족이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어우러져 만화책을 보지 않은 사람도 영화 속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물론 만화책을 본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보았겠지만.  


영화가 끝난 후 당장이라도 농구장으로 달려가 농구를 하고픈 마음을 주체 못했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말에 아들과 함께 농구를 하기로 했다. 뱃살 가득한 녹슨 몸이 움직여줄지 살짝 걱정은 되었다. 이러다 나중에 제대로 걷지도 못할런지 모르겠다. 그래도 농구를 하며 슬램덩크의 추억을 되살리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  <더 퍼스트 슬램덩크>                   ⓒ 에스엠지홀딩스(주)

만화책도 궁금하다는 아들을 위해 한 권씩 사서 보면 어떨까 싶다. 예전처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면 함께 서점에 가서 다음 편을 기대하는 설렘도 누려볼 겸. 30년이 다 된 오랜 친구를 만날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짜릿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이번 편은 송태섭이 주인공이었다. 아직 후속 편에 관한 소식은 들리지 않지만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음에는 채치수, 정대만, 서태웅, 강백호 등 남은 주인공 이야기도 꼭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다음 편은 아내와 딸과도 함께 보고 싶다. '슬램덩크'란 공통 주제로 가족 모두가 하나로 묶일 좋은 기회가 될 듯싶다.  


나의 10대를 함께한 슬램덩크,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갑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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