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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y 09. 2023

나와 닮은 글, 그래서 계속 씁니다

소득 없는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

얼마 전 유명 작가의 북토크를 다녀왔다. 지인의 소개로 가게 되었는데 용인에 있는 독립서점이었다. 이름만 대면 웬만한 사람은 다 알만한 유명한 분인데 대형 서점도 아닌 자그마한 공간에서 북토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용인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서야 서점이 나타났다. 차가 막혀서 5분 정도 늦었다. 안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빡빡하게 들어섰다. 다행히 한쪽 구석에 자리가 남아 있어 앉았다. 이미 공간 안은 북토크의 열기로 뜨거웠다.

    

책방지기가 A란 질문을 하면 작가님은 그에 관한 답을 하기보다는 더 깊고 넓은 이야기를 펼쳤다. 신기하게 듣다 보면 답이 모두 담겨있었다. 마치 소설책 한 권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듯했다.    

  

1시간 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지났다. 이어서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그중 어떤 한 분의 질문과 그에 관한 작가님의 답변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작가님은 오랫동안 많은 소설을 써왔고, 지금도 계속 쓰고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작가님만의 글감을 뽑아내는 비법은 있는지요?”

 

“음…. 저는 제 안에 이야기가 담긴 항아리가 있어요. 그게 어느 순간 차오르면 쓰고 싶고 견딜 수 없거든요. 그게 글이 되고 또 책으로 나오게 되네요. 아직도 여러 항아리가 차길 기다리고 있답니다.”     


작가님의 답을 들으며 부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더구나 글 항아리가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가 있다니. 내 안에도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슬프게도 떠오르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글을 만나 꾸준히 써오고 있다. 등단을 한 것도 아니고, 뚜렷한 결과물도 없으면서 지금도 주말이면 노트북 화면 앞에서 서서 떠오르지 않은 글감을 찾아 헤맨다. 가끔 주변에서 그 열정과 노력으로 투자했으면 이미 부자가 되었겠다며 농담 반 진담 반을 건넸다. 그러게. 그랬다면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이라도 되었을 텐데.      


나는 왜 소득 없는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글쓰기가 내 삶과 닮아서였다. 학창 시절, 특별히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이 평범했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그쪽으로 나아갈 정도는 아니었고, 공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남들보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기에 대학, 취업, 결혼 등 삶의 과정을 거쳤다. 이제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아등바등 살고 있다.      


오래전 글쓰기 수업받았을 때, 처음 글을 썼음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려한 문장을 선보인 분이 있었다. 글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그 깊이와 빠져드는 이야기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에 반해 나의 글은 평범했다. 하긴 살아온 삶 자체가 그러니 담긴 이야기도 그럴 수밖에. 늘 잔잔한 물결 같다는 선생님의 평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아 폐부를 찔렀다. 쓰면서 성장 속도가 눈에 띄는 글벗에 비해 나는 더디게 나아갔다.

     

브런치에서 활동하며 전문 작가 못지않은 글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졌다. 저 사람은 안에 무엇이 담겨있기에 저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급격한 주목과 성과를 보이며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는 모습에 응원을 보내면서 한편으론 씁쓸했다.    

  

그런데도 글을 손에 놓지 못하고 있다. 미련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이어가는 습관이 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도 그렇다고 사내 정치도 잘하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왔기 때문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합리화를 하며.


글 또한 나의 삶의 궤적을 따라갔다. 비록 좋은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성실함으로 매일매일 꾸준히 써왔다. 느리지만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품고. 글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큰 포부는 없지만 내 손을 빌려 평범했던 하루가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 좋다. 그게 바로 글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최근에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의 여주인공 여름을 맡은 설현이 LA웹페스트(LA WEBFEST) 2023 여우주연상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LA웹페스트는 2009년에 시작된 세계 최대 웹 시리즈 영화제로서 올해엔 150편이 출품되었다고 했다. 그 사이에서 수상했다니 대단했다. 그래서 드라마가 더욱 궁금해졌다. 주말에 몰아서 정주행 했다.     

여주인공 여름은 작은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러다 덜컥 회사를 그만두고 연고도 없는 시골 마을 안곡에 내려와 그곳 사람들과 좌충우돌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따스한 이야기였다. 여름은 본인 스스로 살면서 이름 빼고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평범했다. 우연히 친해진 군청 9급 공무원 지영이 7급 시험에 합격해서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 자리에서도 지영은 여름을 걱정하며 무언가 성과를 내길 바랐다. 그곳에서조차 여름은 비교 대상이었다.


마지막 회에 여름의 입에서 행복을 정의한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로 나와 있다. 나는 그게 너무 길어서 이렇게 줄여 보았다. 행복, 모자람 없는 상태로’     


평범한 여름이 늘 세상의 잣대로 비교당하며 불행을 느꼈지만, 지금 그대로 모자람 없음을 깨닫고 행복을 찾았다.      


나의 글쓰기도 그러고 싶다. 주변에 흔들림 없이 그저 소소한 하루를 담아내고 그 안에서 자그마한 행복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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