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습도가 높고 은근 후덥지근했다. 오후에 있을 강의와 인터뷰를 신경 쓴다며 긴팔을 입었는데 출근길에 목 아래로 땀이 주르륵 흘렀다. 늘 뒷주머니 안에 놓아두었던 손수건도 보이지 않았다. 하필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럴게 뭐람. 마음속 투정이 뾰족이 얼굴을 내밀었다.
출근하자마자 바쁜 일이 쏟아졌다. 신기하게도 쳐내고 쳐내도 일은 늘 수북이 쌓인다. 점심 무렵이 다 되어 기어이 일이 터졌다. 내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발송한 문서에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밥을 먹고 바로 나가려는 계획은 틀어졌다. 그래도 전화로 어찌어찌 해결하고 구내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오후에 있을 강의장소는 회사에서 두 번이나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다. 마음이 또다시 분주해졌다. 컴퓨터를 끄고, 책상 정리를 마치고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비는 내리는지 그쳤는지 모를 정도로 약하게 떨어졌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다행히 열차는 전 정거장을 출발했다.
팽팽한 긴장감은 그제야 살짝 누그러졌다. 중간에 한번 환승하고 드디어 종착역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강의 장소는 의정부에 위치한 신곡 2동 작은 도서관이었다. 핸드폰 앱을 켜고 더듬더듬 장소를 찾아갔다. 5분 정도 걸은 뒤에 드디어 도착했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도서관 내부가 참 예뻐서 슬쩍 구경을 하려다가 그만 담당 선생님을 마주했다. 그분의 손에 이끌려 강의장으로 향했다. 눈앞에 바로 현수막이 보였다. 탁자 위에는 '아빠의 가족 독서모임 만드는 법'책도 놓여 있었다. 매번 이 순간이 왜 이리 부끄러운지 모른다.
PPT가 잘 구동되는지 살펴보는 동안 하나 둘 참석자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때였다. 한 여성분이 오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본인 이름을 '모카'라고 밝혔는데, 맙소사 온라인 매일글쓰기 글벗이었다. 꽃다발까지 챙겨서 주는데 어찌나 든든하고 고마운지. 뜻하지 않은 반가운 손님 덕분에 긴장마저도 모두 풀렸다.
날씨가 궂어서인지 신청하신 분들보다는 적게 참석했지만, 그래서 더욱 밀도 있게 북토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남성분도 있었고, 30대부터 80대까지 연령이 다양했다. 80대 어르신은 독서모임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는데 얼마나 멋있던지. 그 연세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 모습에서 내가 더 배우는 시간이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참석자분의 눈빛에 매료되어 쉬는 시간도 잊은 채 1시간 반을 꽉 채웠다. 다들 가족 독서모임을 꼭 하고 싶다는 간절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구석까지 모두 긁어 전달하였다. 이어지는 질문시간을 모두 마치고 잠시 머물 시간도 없이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사서분께서 선물을 챙겨주었다. 두 손 바리바리 짐을 들고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인터뷰 장소인 여의도로 향했다. 네이버 길 찾기로만 1시간 반이 걸렸다.
다행히 열차는 바로바로 와주었고 정시에 여의도에 도착했다. 카페문의 열고 들어가니 오른편에 노트북과 사진기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분이 보였다. 한눈에 기자분임을 알 수 있었다. 다가가 인사를 했더니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경제 전문 이투데이 피엔씨에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는 중년과 노년을 대상으로 한 월간지에서 발간하는데 메인 주제로 글쓰기로 삶이 바뀐,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구체적인 팁을 제공할 작가를 찾던 중 나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인터뷰 시작 전 사진을 찍었다. 왜 이리 갈수록 사진 찍는 것이 어색한지. 부끄러움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드디어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기자분은 감사하게도 내가 다양한 매체에서 쓴 글을 모두 읽고 오셨다. 질문을 하고 답을 하기보다는 마치 친구와 수다 떠는 듯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부담 없이 말이 술술 나왔다. 일하고, 강의하고, 장거리 이동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방전되었는데, 오히려 충전하는 시간이 되었다. 마흔에 처음 글을 만나고 꾸준히 글을 쓰면서 글벗을 만나고, 출간도 하고, 강의까지 하게 된 일련의 과정을 풀어내다 보니 지금 이 순간이 꿈 만 같단 생각이 들었다. 기자님에게도 이야기했듯이 무엇을 이루겠다는 원대한 목표 없이 그저 하루하루 꾸준히 글을 써왔기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앞으로의 꿈을 묻는 기자님의 마지막 질문에, 호호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글을 쓰고 싶다고 답했다. 진심이었다. 누군가처럼 훌륭하고 좋은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그저 사라질 소중한 일상을 글에 담아내는 일은 펜을 쥘 수 있는 한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기자님 역시도 즐거운 시간이었단 말에 흐뭇했다. 글에 관한 이야기이니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으랴. 어느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기자님은 10월 호에 실릴 예정이고, 발간되면 집으로 배송해 준다고 했다. 어떻게 활자화되어 나올지 벌써 기대가 되었다.
지하철 역 앞에서 기자님과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주겠다는 말에 이번이 끝이 아니겠다는 느낌 아닌 느낌이 왔다. 글을 쓰면서 인연이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는 마법 같은 일을 계속 만났다.
이제 다음 주 토요일에 있을 제이문 작가님과의 콜라보 북토크를 끝으로 9월 일정은 모두 마무리된다. 새로 발령 난 근무지에 적응하느라 바빴으면서도 부캐 활동도 지금까지는 순항 중이다.
콜라보 북토크는 처음이라 어떨지 궁금하면서도 기대되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시간도 두고두고 회자될 순간이 되리라는 것이다.
다음 주 북토크 신청 좌표를 공유합니다. 서울대입구 인근 '자상한 시간'이란 북카페에서 진행됩니다. 참가비도 무료이고, 현직 교사이자 반 아이들과 꾸준히 책을 읽고 생각 나누기를 해온 '생각훈련 독서법'저자 제이문 작가님과 함께하니 관심 있는 분의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