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급한 성격인 아빠를 간파한 딸의 단속에 한발 물러섰다. 가족독서모임 날은 특별히 서로 간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딸이 오는 그 시간까지 빨리 하고픈 마음을 진정시키며 기다렸다. 드디어 저 멀리서 다가오는 딸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 한 가지 부탁이 더 있는데, 내가 오늘 숙제가 많아서 9시는 넘기지 않기다."
"오케이 알았어."
시작부터 쉽지 않았지만 기대했던 딸과 함께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으니 그게 뭔 대수일까. 더구나 오늘 함께 할 그림책은 오랜 글쓰기 글벗인 강수린 작가님의 '답을 구하시오 SOS'였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림책까지 낼 줄이야. 책 표지만 보아도 딸과 나눌 이야기가 한가득할 것 같았다.
한 장씩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처음엔 심드렁했던 딸은 갑작스레 눈이 커지더니 멈추고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아빠, 이거 정답이 뭘까?"
"그림 안에 고양이가 보이네."
"와. 그림 너무 이쁘다."
아까 빨리 끝내 달라는 딸은 어디 갔는지 이미 그림책 속에 푹 빠져들었다. 나 또한 예쁜 그림과 더불어 의미심장한 내용을 보고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단연코 요 근래 보았던 그림책 중 최고였다.
줄거리
요즘 아이들이 가장 많은 듣는 말은 ‘답을 구하라’는 말이다. 무조건 정답만 구하면 되고 그 과정은 중요치 않은 현실에서 한 번쯤 세상이 정해 놓은 답에서 비껴나가 창의적인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네 명의 아이는 시험지 속에 들어가 정답이 하나가 될 수 없는 문제들을 함께 풀며 여행을 떠난다. 문제도 풀고, 맛있는 만두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문제 밖에 떨어진 아기 고양이를 구하는 어려운 미션에 당면하는데. 과연 아이들은 무사히 고양이를 구할 수 있을까.
질문거리
1. 딸의 질문 : 아기 고양이를 어떻게 구했을까?
- 문제 밖에 있기에 쉽지 않았지만, 4명의 친구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골라 이어 구출할 수 있었다. 아빠 생각엔 혼자 풀기 어려운 문제도 함께 힘을 모으면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듯하다.
2. 아빠의 질문 :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 정답이 반드시 하나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정답이 확실한 것이 좋다. 딱딱 떨어져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3. 딸의 질문 : 아빠는 어릴 때 답을 잘 구했나?
- 아빠 어릴 때는 주입식 교육이라고 해서 답을 계속 머릿속에 넣는 일을 반복했었다. 솔직히 아빠는 공상도 많고 의문도 많아서 왜 그래야 하나 답답했었는데 그때는 그것이 허용되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쉽다.
4. 아빠의 질문 : 혹시 정답보다는 그 과정이나 이유 등을 생각하게 하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나?
- 무슨 소리냐. 그럴 시간이 없다. 정답만 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아직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앞으로도 불가능하지 않을까(안타까운 마음에 우리 학생들이 어릴 땐 두각을 나타내지만 커서는 정체되어 노벨상을 아직 받은 사람이 없다며 그 안타까운 현실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5. 가장 인상적인 장면
1) 딸의 장면
아이들이 힘을 합심해서 고양이를 구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각자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아서 해결하는 모습이 그림책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같아서 선택했다.
2) 아빠의 장면
첫 장면을 보자마자 고구마를 10개나 집어 먹은 듯 속이 꽉 막혔다. 정답만 구하려는 현실 자체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안타깝고, 이 그림책이 만들어진 시작이 아닐까 싶어 선택했다.
소감
아빠의 소감 : 책이 그림도 예뻤지만 내용이 너무 좋았다. 나 역시 정답만 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고, 딸과 함께 해서 행복했다.
딸의 소감 : 처음엔 솔직히 큰 기대가 없었는데, 그림책을 읽으며 고민하지 않았던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여전히 나에겐 정답이 중요하지만, 한 번쯤은 다른 답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모임을 끝내려는 순간 딸이 책 안에 있는 문제의 답을 하나하나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아빠 우리 여기 나온 문제 하나하나 다 풀어보자!"
"좋지."
"이건 정답이 뭐라고 생각해?"
"음..... 4번 같아. 예전에 물방울 가지고 실험해 보았는데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지만 빵 터지더라고."
"물 수제비는 누가 가장 멋질까?"
"난 세 번째 것. 멀리 가진 못했지만 모양이 가장 멋지잖아."
"아빠. 이 여자애가 추는 춤 뭔지 알아?"
"아니."
"여자아이들의 퀸카에서 나오는 춤이잖아."
"야. 표지 만져봐. 요기만 볼록하고 입체적이지."
"정말 그렇네. 난 뺨에 대볼 거야."
둘이서 내 멋대로 답을 구하는 것이 어찌나 재밌던지. 더구나 그림책을 장면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며 만져도 보고, 그림체가 예쁘다고 계속 감탄했다. 어느새 딸이 말했던 9시를 훌쩍 넘겼다. 딸은 아쉬움을 뒤로 한채 방으로 향했다.
요 근래 사춘기가 슬슬 시작되는 딸이랑 이렇게 즐겁게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던가. 그림책 덕분에 한바탕 잘 놀았네. 그건 좋은 책만이 가진 힘이었다.
한편 이 책을 딸과 함께 읽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수없이 만났다. 그런데 왜 정답만 배워왔을까. 아직 정답이 좋다는 딸이지만 그래도 이번 독서모임이 마음의 자그마한 울림이 있길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