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배 Mar 10. 2024

고등학생 아들이 독서모임을 하자고 했다

올해 아들과 첫 가족 독서모임을 하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건 즉 시간이 더욱 없어졌단 뜻이었다. 아내는 당분간 독서모임 방학을 선언했고, 딸은 이제 막 사춘기에 진입해서 방에 잘 나오지도 않아서 얼굴 보기 힘들고. 5년간 이어온 가족 독서모임이 이대로 끝이 나는 걸까. 혹여나 하는 마음에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아빠랑 둘이서 독서모임 할까?"

"그래 하자."

"정말? 나중에 말 바꾸기 없기다."

"응."


허튼 말은 절대 안 하는 녀석이니. 그런데 왜 한다고 했을까. 기쁘면서도 찜찜한 기분을 한구석에 간직한 채 독서모임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시간은 금세 흘렀고,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토요일 저녁, 아들에게 저녁 8시까지 테이블로 오라고 했다.


5분, 10분,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속으로 '참아야 해.'를 수없이 되뇌었다. 드디어 15분이 지난 시점에 잠옷 차림의 텅 빈 얼굴을 한 아이가 빈손으로 나타났다.


"책은?"

"반납해 버렸네."

"그래도 책은 가져와야지...."

"말로 하면 돼."


'아무렴 어때.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자고 해서 냈는데 내가 져버렸다. 시작부터 자세가 삐딱하니 협조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에게는 비장의 무기 바로 '삼박한 줄거리 설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고른 책은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다.

줄거리

무명 배우의 아들이었던 '그'는 나중에 부가 유명해지면서 모와 함께 버려진다. 가슴 한가득 공허만 가득 찬 그는 작가가 되려던 중 백화점에 취업한다. 그곳에서 그와 닮은 '요한'이라는 형과 친해지고, 함께 어울려 다닌다. 그러던 중 눈에 띄게 못생긴 '그녀'를 만나게 된다. 외모로 인하여 백화점에서도 왕따를 당하던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 못 해 '그'는 결국 고백하고 사귀게 된다. '그', '그녀', '요한'은 셋이 어울리려 다닌다. 행복한 시간도 잠깐, 요한의 자살시도로 인하여 둘의 관계도 멀어지다 '그녀'는 '그'를 떠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재회하는데 그날 교통사고를 당하여 2년간 의식 없는 상태로 병원에 누워 지낸다. 그렇게 13년이 지난 후 우연이 '그'는 '그녀'가 독일에서 산다는 것을 알게 되고 찾아간다. 둘은 만나서 오해를 풀지만 그 안에 깜짝 놀란만 한 반전이 있었으니.


질문거리


1. 아빠의 질문

1) 책 표지를 보고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

-  음.... 궁중의 모습 같은데 사람들 모두 흑백인데, 난쟁이로 보이는 한 사람만 칼라였다. 그 이미지가 강렬하다.(책 표지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으로 왕녀 마르가리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왜소한 사람을 등장시켰다는 점을 설명함.  그리고 책의 제목은 라벨이 베라스케스의 작품 <왕녀 마르가리타>를 보고 감명받아 작곡한 작품임을 알려줌)


2)  작가는 다들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만 책의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 반발하여, 못생긴 사람이 주인공인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느낀 점이 있나.

- 사람은 본디 잘나고 못생기고 가 따로 없다. 설사 세상의 잣대로 못생긴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사람들이 그걸 판단할 수 있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더구나 그걸로 차별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혹여나 학교 다니면서 그런 상황을 마주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남학생들끼리 서로 놀리듯 이야기한 건 본 적 있지만, 여학생을 대상으로 그런 적은 없었다고 답함)


3) 외모와 상관없이 사랑할 수 있는지

- 솔직히 난 외모는 크게 상관없다. 사람마다 가진 매력이 다르기 때문에 외모 한 가지 만으로 좋아하고 그럴 순 없다. 방송이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외모가 중요하다고 은연중에 강조를 하는 면이 일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다들 예쁘고, 잘 생길 순 없지 않은가. 난 외모보다는 매력을 보고 싶다.(모태솔로인 아들이 그래도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중에 두고 볼 일이지만.)


아들의 책은 천선란 작가의 '노을 건너기'였다.


줄거리

주인공 '공효'는 우주 비행사이다. 캡슐 알약을 먹고 AI가 구현한 어린 자신을 만나는 여행을 시작하는데 그곳에서 홀로 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난다. 어린 공효는 엄마의 무관심에, 때로는 친구의 말에 상처를 받고 아파한다. 어른 공효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어린 공효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둘은 함께 노을을 건너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데, 그 안에서 우여곡절을 겪는다. 과연 그 둘은 안전하게 노을을 건널 수 있을까.


1. 아들의 질문

1) 만약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

- 지금 떠오르는 건 대학교 1학년 시절이다. 그 당시 누나가 일본 유학 중이었는데, 집에서 누나를 만나러 그렇게 일본을 가보라고 했는데 가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에 관한 간절함이 없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일본을 갈 것이고, 그 외에도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고 싶다.


2) 어린 시절 나에게 조언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 어린 시절 '나'는 겉으로는 대범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몹시 약하고 소심한 존재였다. 그걸 감추기 위해서 오히려 센 척을 했다. 만약 어린 '나'에게 조언을 할 수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그렇게 애쓰지 말고, 소심하면 소심한 데로 살아도 주변이 떠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해 주겠다.


3) 과거의 일부가 바뀌면 현재도 바뀔까?

-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는데. 과거가 바뀐 여러 영화들을 보아도 큰 틀 안에서의 결론은 같은 걸 보면 불가능한 일임에 분명하다. 나도 한때 과거에 집착하고 안타까워한 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지금 살아가는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고픈 마음이 크다.


소감


아빠의 소감 : 우선 이렇게 가족 독서모임을 한다고 해서 고마웠다. 오늘 나눈 책들 모두 그 안에 심오한 뜻이 있었고, 그걸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아들의 소감 : 방금 아빠의 말처럼 오늘 책이 흥미로왔다. 나중에 아빠가 소개해준 책도 꼭 읽어보고 싶다. 무언가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왜 아들이 하자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들 역시도 나처럼 책을 읽고 나누는 시간을 원했음이 분명했다. 더욱 바빠진 학업에 잠시나마 벗어나 책을 통해 숨통이 틔이면 좋겠다. 평소에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속이 꽉 찬 줄 독서모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과의 독서모임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속 다짐을 해보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는 한 달 한번 주말에 모여 독서모임을 이어갈 예정이다. 아들의 사소한 행동에 일일일비하지 말고 큰 틀로 바라보아야겠다. 내가 권해서 한 것이 아닌 본인이 좋아서 선택한 모임이다. 아들을 믿고 나 역시 독서에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이 모임은 어떡해서든지 끌고 가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




한 줄 요약 : 그런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다.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딸과 함께 떠난 '답을 구하시오 SOS' 그림책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