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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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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11. 2019

관계의 단면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00은 어떤 사람이야." 말은 그 사람의 전체를 나타낼 수  있을까.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직장도 '세평'이라는 말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매우 발달되어있다. 지금 근무지로 오기 전 나도 그 '세평'을 통해 갖가지 정보를 수집하게 되었다. "00은 이런 면이 있으니 조심해라.", "00은 너에게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다." 등등. 사람을 만나기 전부터 그 정보들로 인하여 나도 모르게 단정해버렸다.

한 달이 조금 지난 지금 시점에서 그런 평가들이 별 의미 없이 느껴진다. 막상 겪고 보니 도움받을 것 같은 사람이 기대만큼은 아니고 오히려 조심하라는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배려를 받기도 하면서 내가 세운 시스템 붕괴가 됐다. 한 발자국 옆에서 보니 다들 가정에 있는 자녀들 걱정하고 일상의 소소함에 일일 일비 하는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 특성은 있어서 위기 상황에 본능적으로 발휘될 때도 있지만 거의 본 적은 없다.

언제부턴가. 아니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나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생겼다. 최대한 말은 조심하고 나의 약점이 될 수 있는 개인적 특성은 어지간하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세평' 시스템에 나에 대한 평가는 '무난하다.'인 것 같다. 그러한 평가 덕분에 덕을 본 일도 많았지만 깊은 관계 맺음은 늘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내가 나를 드러내는 만큼 상대방도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만나면 늘 반갑고 좋지만 딱 그 만인 관계가 많은 것도 같고.

하긴 어찌 보면 지금 있는 곳이 나에게는 편할 수도 있다. 개인적 특성은 최대한 지우개로 빡빡 지워야 하고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도움된다. '모난 정이 돌 맞는다.'라는 표현이 딱 맞는 곳이다. 그런 사람이 모여 있기도 하고 몸가짐에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개인적 특성이 발현될 때 철저히 무시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동료 하나가 눈에 밟힌다. 하루하루 지쳐가는 모습이 보인다. 시스템의 특성상 어디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감내하는 것 같다.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이곳에서 그 모습은 금방 도드라진다. 다들 나처럼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표현하기도 그 표현을 받기도 난해한 상황의 연속이다. 계속 마음이 불편한 체로 있을 순 없다. 언제 기회를 봐서 커피 한잔이라도 해야겠다.

이런 말 한마디 쉬이 주고받기 어려운 상황이 구슬프기도 하지만 그 물에 그냥 흘러가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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