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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r 24. 2024

봄 타나 봐

가을보단 봄을 탄다

도서관 봉사를 끝나고 나오는 길, 안양천을 지나는데 날이 참 좋았다. 완연한 봄날에 붐비는 사람들을 보며 봄기운 대차게 내 안에 차올랐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얼른 아내에게 연락했다.


"여보, 날이 참 좋아. 잠시 산책 나갈까?"

"아니. 나 너무 힘들어. 오늘은 방콕 할래."

"알았어."


다시 핸드폰을 들고 딸에게 연락했다.


"딸, 완전 봄날이다. 아빠랑 산책 가자!"

"안돼.... 숙제가 해야 돼.

"1시간도 안돼?"

"응. 미안."


이대로 포기할쏘냐.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 날씨 끝내준다. 아빠랑 안양천 걸을래?"

"나 좀 전에 친구들이랑 축구차고 왔어, 좀 쉴래."

"알았다."


힘이 쭉 빠지네. 할 수 없이 집에 들어와 보니, 아내가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은근슬쩍 옆에 누우려 했더니 곧바로 발길질이 날아왔다. 하마터면 방바닥에 뒹굴 뻔. 저만치 누워 나가자고 몇 번 조르다가 씨알도 먹히지 않는 걸 알고 결국 체념했다.


터벅터벅 거실로 나와 테이블에 앉았다. 읽다만 책을 꺼내 보았으나 글자가 머릿속을 숭숭 통과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이대로 혼자 안양천을 나갈까. 왠지 초라해. 그냥 밀린 글이나 쓸 까. 아니야. 이럴 땐 운동이 최고지.' 부유하는 생각 속에 결심했다. 운동 가방을 챙겨 들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들고, 오르고, 밀고, 당기고, 뛰고 나니 온몸 가득 땀이 들어찼다. 헉헉 거친 숨소리 속에 그제야 설렘이 잦아들었다. 일부로 차가운 물에 몸을 씻었다. 정신이 번쩍 들며 이제야 살 것 같았다.


밖은 이미 검게 물들고 여전히 더운 기운이 살갗에 닿았다. 간간이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은 발길을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인도했다. 걸으며 좀 전까지 가족들에게 서운했던 감정도 털어냈다. 마음이 이리 싱숭생숭 한 걸보니 봄이 오긴 왔나 보네. 신기하게도 이맘때만 되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주체 못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아내에게 연락했다.


"나 이제 운동 끝나고 가는데 저녁거리 좀 사갈까?"
"좋지. 애들이 감자탕 먹고 싶데."

"오케이. 알았어!"


맛있게 먹을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리며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한 줄 요약 : 남자도 봄을 탄다.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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