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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l 21. 2024

선잠

라라크루 <금요문장공부>

[오늘의 문장]  - 이태준, <무서록>

지금 내 옆에는 세 사람이 잔다. 안해와 두 아기다. 그들이 있거니 하고 돌아보니 그들의 숨소리가 인다. 안해의 숨소리, 제일 크다. 아기들의 숨소리, 하나는 들리지도 않는다. 이들의 숨소리는 모두 다르다. 지금 섬돌 위에 놓여 있을 이들의 세 신발이 모두 다른 것과 같이 이들의 숨소리는 모두 한 가지가 아니다.


모두 다른 이 숨소리들을 모두 다를 이들의 발소리들과 같이 지금 모두 저대로 다른 세계를 걸음 걷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꿈도 모두 그럴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앉았는가? 자는 안해를 깨워볼까 자는 아기들을 깨워볼까 이들을 깨우기만 하면 이 외로움은 물러갈 것인가? 인생의 외로움은 안해가 없는 데, 아기가 없는 데 그치는 것일까. 안해와 아기가 옆에 있되 멀리 친구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의 외로움이요. 오래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일 것이다. _무서록(이태준)




[나의 문장]  - 신재호, <선잠>

까슬한 느낌이 살에 닿아 잠에 깼다. 누르스름한 존재 너머로 아내가 등을 들썩거리며 잠을 자고 있다. 나와 아내 사이에 가로로 누워 '가르랑' 숨소리를 내는 낯선 손님은 바로 '미루'란 강아지이다. 지인이 여행을 가게 되어 잠시 우리 집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자는 모습이 마치 사람 같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자다 깨고, 미루 역시 가로로 잤다가 세로로 잤다를 반복한다. 아내는 침대 끝에 누워 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자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는 중이다. 내 몸이 혹여나 작은 강아지를 덮칠까 신경 쓰느라 잠을 못 이루고, 아내는 미루가 떨어질까 본인을 구석에 몰아넣다. 미루 역시 진즉에 깨서 돌아다녀야 하거늘, 우리 옆에 꼭 붙어 잠 드려 몸부림친다. 인생은 늘 우두툴한 도로 같지만, 그 속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모여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서 우리는 그렇게 긴 밤을 계속 설치며 보듬는다.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 #금요문장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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