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출판사에서 메일이 왔다. 읽어보니 KBS 라디오'임수민의 지금 이 사람'이란 프로그램에서 섭외 연락이 왔다고 했다. 글 말미에 책 홍보에 도움이 되니 꼭 했으면 좋겠다는 문구가 마음에 꼭 박혔다. 솔직히 부담이 되긴 하였지만 홍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못하랴. 하겠다고 답메일을 보냈고, 곧바로 프로그램 작가에게서 문자 연락이 왔다.
'다양한 분야의 리더에서부터 이 시대 이슈가 되는 인물, 때로는 숨어있는 인물도 발굴해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입니다.'이란 소개문구와 더불어 가능 일정을 물었다. 마침 추석 전날 회사에 여유가 있어서 그날로 답문을 보냈다. 인터뷰의 주된 주제는 이번에 출간한 '사춘기 아들 갱년기 아빠는 성숙해지는 중입니다' 내용이 될 거란 것과 사전에 질문지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인터뷰 날짜가 다가올수록 왜 이리 심장이 주체 없이 뛰는지. 방송국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면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걱정만 산처럼 늘었다. 사춘기와 관련된 책을 쓰기는 했지만 그건 일상 속에 녹아든 삶의 이야기였지, 전문서적은 아니었다. 어떤 질문이 올지 오매불망 기다렸지만 결국 인터뷰 당일 새벽에 받을 수 있었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내 책과 관련된 내용이 주였다. 꼼꼼히 책을 읽고 구석구석 살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인터뷰 당일, 회사에 조금 일찍 퇴근을 하고 여의도로 향했다. 전날 아내에게 옷을 골라달라고 했더니, 하얀색 셔츠가 가장 깔끔하고 좋다고 했다. 비록 라디오이지만 그래도 단정하게 입고 가야 했기에 습하고 더운 날씨임에도 반팔 대신 긴팔을 택했다. 다행히 미치도록 더운 요즘 날씨 중에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국회의사당역에 내려서 천천히 걸어갔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했다.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방송국 앞에 있는 커피숍에 들러 카페라테를 한 잔 주문했다. 시원한 커피가 몸속에 들어가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본관 1층 로비에 도착하니 수많은 소녀들이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일렬로 서있었다. 이윽고 한눈에 보아도 연예인 같은 꽃미남이 등장에서 팬들과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궁금한 마음이 있었지만, 소녀들 사이에 낄 자신이 없어 그저 뒤에서 바라만 보았다.(나중에 딸에게 이 사실을 들켜서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냐며 엄청 구박을 받았음)
민원실로 가서 출입증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인터뷰할 스튜디오는 5층에 위치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스튜디오에 다다랐는데 'ON AIR'란 빨간 표시등에 섣불리 들어갈 수 없었다. 작가님께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니 괜찮다고 들어오라고 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더니 안에서 방송이 진행 중이었다. 작가님과 인사를 나누고 구석 소파에 앉아 대기를 했다. 부스 안을 보니 요즘 핫한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관계'를 주제로 대화 중인데 어찌나 달변가인지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속으로 방송을 하려면 저 정도는 돼야지 하며 괜히 주눅이 들었다.
10여분 정도 지나서 녹화가 끝났다. 그제야 피디님이 와서 인사를 나눴는데 오늘 담당 피디가 휴가 중이라 대신 나왔고, 요즘 '사춘기'가 이슈이니 나중에 기회 되면 본인 방송에도 출현 요청할 수 있다며 명함을 주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답을 했다. 이어서 임수민 아나운서가 부스에서 나왔다. 단아한 모습에 밝게 맞아주어서 한결 마음이 편했다. 곧바로 부스에 들어가 인사를 나눴다.
"전혀 긴장할 필요 없어요. 책 내용 중심으로 묻고 답하는 시간이니 편하게 이야기 나눠요 우리."
말처럼 물 흐르듯 질문을 하고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괜히 질문지를 들고 들어가 뒤적거리다가 NG가 한번 났고, 종이를 아예 치우고 다시 인터뷰를 이어갔다. 생방송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사춘기 아들 갱년기 아빠는 성숙해지는 중입니다.' 안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그와 파생된 다양한 질문이 오갔다.
예전과 다른 요즘 청소년의 특징, 사춘기 아이들에 대한 대화법과 접근법. 나와 아들과의 힘들었던 일화부터 사춘기 극복의 노력들, 그리고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에게 줄 수 있는 팁들까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치 친한 친구와 이야기 나누듯 떠들고 있었다. 방송을 하고 있는 것마저 새까맣게 잊고 말이다. 1시간 여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고, 마지막 인사로 끝이 났다. 뭔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무사히 마쳤음에 안도를 했다.
임수민 아나운서와 작가님 그리고 피디님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고 방송국 밖을 나왔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 사이를 걸으며 오늘 일을 되새겼다. 전쟁과도 같았던 아들과의 사춘기 순간들을 글로 풀어내며 위안받은 일이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오게 되고, 덕분에 라디오 방송까지 출연하게 되니 삶은 역시 한 치 앞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내 앞에 또 어떤 일들이 다가올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속엔 언제나 글이 함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