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레슨

by 실배

토요일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피아노 레슨이다.

오전 아들 학원 데려다주고 나면, 집에 와서 간단히 청소하고 딸과 식사한다. 설거지까지 마치면 따듯한 커피와 책 읽을 시간이 주어진다. 잔잔한 음악 틀고 여유롭게 독서하던 중 딸의 다급한 호출이 이어진다.

"아빠. 빨리 여기 와봐."

두려울만치 다부진 표정으로 피아노 책을 꺼냈다. 그리곤 먼저 한곡 연주한다.

"잘 들었지. 이번엔 아빠가 쳐봐."

뭐. 이 정도쯤이야. 하나 금세 불협화음이 쏟아진다. 별것 아니라 생각했는데, 왼손과 오른손은 계속 따로 논다.

"아빠. 봐봐. 손가락 위치는 여기다 놔야지. 악보에 적힌 것 보면 부드럽게 천천히 눌러야지 그렇게 세게 쾅쾅 치면 어떡해. 내가 한번 다시 칠 테니 따라 해 봐."

딸은 마치 피아노 선생님이 된 것처럼 나를 가르친다. 보통 까다로운 선생님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음이탈 나면 "다시"를 외친다. 겨우 한 곡 마스터하면 곧바로 다른 곡이 기다린다. 난이도는 점점 높아진다. 딸의 목소리도 커진다. 나는 집중해서 딸의 손을 따라간다.

어쩜 그리 조그만 손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는지 잠시 넋 놓고 보다 이내 집중한다. 잘 보고 기억해야 내 차례가 되어 잘할 수 있다. 똑같은 손인데 내 연주는 왜 이리 삐뚤빼뚤 거리는 지. 몇 곡 함께 치다 보니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거 묘하게 재밌네. 처음은 엉망이고, 다음은 몇 군데 실수, 이렇게 반복하면 결국 한 곡 완주한다. 그 뿌듯함에 아주 잠시 피아노 연습해볼까 하는 헛된 꿈도 꿔보았다. 창가 뒤로 따듯한 햇살 받으며 멋진 재즈곡을 연주하면 얼마나 멋질까. 그저 상상은 상상에서 끝나야 상상이다.

피아노 레슨 마치고, 내 자리로 돌아와 다시 책 읽기 시작했다. 평온함이 손끝 마디까지 찾아왔다. 그래 내가 있을 곳은 여기지. 예전 향수를 느끼게 만드는 책 속에 빠져 나만의 휴식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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