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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Apr 02. 2020

꿈틀대는 마음

그냥 그럴 때가 있다. 뭐든지 귀찮고 하기 싫은 날. 회사에서 반강제로 연가 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마음은 엉쿼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다짐한다. 눈을 떴다. 이른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다시 눈을 감았다. 부유하는 생각이 나를 옥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일어나자. 아침 7시. 출근 준비로 바빴을 시간. 아직 어둠이 가지 않은 테이블에 앉았다. 세상 멈춘 듯 고요함이 소리 없이 퍼진다.

오후 느지막이 둘째 학원 배웅 나섰다. 낮에 당최 가지 않은 길. 이미 길가에 봄은 가득했다. 눈같이 흩어지는 벚꽃잎은 절정의 아름다움 끝으로 자기 소임 다했다. 그 자리밖에 없을 곳에 서있는 둘째는 무언의 몸짓을 보낸다.

둘째 손이 내 팔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좋다. 연신 춤추듯 몸을 배배 꼰다. 무엇이 저리 좋을까. 귓가에 둘째의 조잘거림이 끝도 없다. 봄은 아이 마음에 좀 더 깊이 다가서는 것 같다. 잠시 무거운 마음 봄에 담아 날려본다. 늘 가는 천에 꽃이 한가득 만개했다는 둘째 말에 가보고 싶어 졌다. 학원 끝나는 시간은 아직 1시간이 남았다. 귀에 이어폰 꽂고,  멜론에서 봄에 들으면 좋을 플레이리스트를 눌렀다.

입구에 들어서자 신세계였다. 맞아. 아직 개학 안 했지. 주말같이 가득한 사람으로 당황했다. 아무 데 돗자리 깔고 봄을 누렸다. 그 뒤로 분홍색 색연필로 칠한 듯한 벚꽃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생기가 나에게 전해졌다. 봄은 이런 거지. 조금만 생명까지 꿈틀댄다. 곳곳에 막을 깨고 솟아나는 기운을 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제법 불어오는 바람맞으며 오롯이 봄을 담았다. 세상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 불변의 존재 앞에 그저 삶의 고민은 얼마나 보잘것없나 싶다. 내 안에 꿈틀거리는 무언가 느끼며 봄에 발길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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