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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Apr 04. 2020

좋아하는 작가 있어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요?"라고 물으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책을 고를 때 느낌을 믿는다. 이 책이 그랬다. 누나가 준 교보문고 기프트권이 이제 책 한 권 살 정도만 남았다. 순간 이 책이 다가왔다. 이도우 작가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였다. 왜 그랬을까. 그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저녁 6시. 재택근무 마치는 시간. 아내는 일 마치고 돌아왔다. 아직 풀리지 않은 마음.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요 며칠 틈나면 계속 YES24로 향한다. 구석에 자리 잡고, 책을 읽는다. 책 속에 숨는다는 말이 더 정확할 듯하다. 첫 장을 열었다.


겨울이 와서 좋은 이유는 그저 한 가지. 내 창을 가리던 나뭇잎들이 떨어져 건너편 당신의 창이 보이는 것.


별다른 묘사 없이 그 상황이 그대로 들어왔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선명한 그 사람의 창. 그래서 좋은 겨울의 이유.


마음 상처 가득한 해원이 잠시 이모가 있는 북현리 마을에 와서 독립서점 '굿나잇 책방'을 운영하는 동창 은섭을 만나 자신도 사랑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중간중간 은섭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비밀글 읽는 재미도 있다. 블로그에 글 쓰는 나와 맞닿은 점이 있었다. 다양한 독립 출판물도 소개하는데 찾아 읽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그것이 모두 00이라니 ㅜㅜ)

책 읽으며 하나의 책에서 처음 독서 모임 만나 지금까지 이어온 순간이 계속 떠올랐다. 작가님도 직접 독서 모임에 참여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처음 만남의 긴장감, 함께 책 읽고 나누는 장면이 구체적이다. 코로나로 잠시 멈춘 독서 모임이 그립다.

이분 문장은 참 곱다. 감정선은 깊은 호수 같다. 될 듯 말 듯 한 이음새를 따라가다 보면 애간장이 탔다. 서두르는 법도 없다. 천천히 그렇지만 꾹꾹. 어느새 나도 추운 겨울 뒤 산에 올라 조그만 점 같은 북현리 마을 내려다보고 있다. 어떤 문장은 통째로 필사 노트에 담았다.


저만치 발아래 북현리 야경이 펼쳐졌다. 검은 도화지 같은 들판 사이로 점점이 모여 앉은 집집마다 불빛들이 새어 나왔다. 시내로 나가는 도로를 따라 가로등들이 줄을 잇다가 멀리 소실점으로 사라져, 손에 잡히지 않는 반딧불처럼 아스라해 보였다.


마당의 푸른 나뭇잎이 하늘 가장자리에 한들한들 바람에 떠 있었다.

나라면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렸다고 썼을 텐데. 천천히 곱씹어보고 싶은 문장이 가득했다. 종종 보이는 순 우리말은 뭐지 하며 문맥으로 이해하지만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따듯한 글이다. 내내 자극적인 바다에 허우적대다 구조된 것 같다. 사람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좋다. 내 안의 감성이 봄 만난 새싹처럼 솟아났다.

"30분 뒤 매장 정리합니다. 정리해주길 바랍니다."

어느새 시곗바늘은 저녁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서둘러 마지막 장으로 향했다. 그러다 만난 마지막 문장.


창밖으로 손바닥에 올린 겨울 한 조각을 내밀어, 초여름의 햇빛과 밤의 달빛을 그 안에 담고 싶다. 무언가를 비추고 싶다.

아스라이 꿈틀대는 내 안의 그 무엇. 서둘러 앞장 펼쳐 이도우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았다. 저릿한 사랑 이야기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검색대로 달려가 마지막 남은 책 들고 계산대로 달렸다. 시곗바늘은 아직 9시 50분이었다. 휴. 다행이다. 아직 그의 문장에 벗어나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작가 있어요?"
"네. 이도우 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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