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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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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Apr 08. 2020

볕이 잘 드는 집 앞마당에서.

어제 팀원들과 저녁 먹은 후 잠시 홀로 주변 산책을 했다. 이래저래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근무하는 과천은 계속해서 고층 아파트를 짓고 있다. 울창한 아파트 숲을 따라 지나가니 고즈넉한 단독 주택가와 마주했다. 마치 계란 프라이 노른자처럼 그 지역만 동그라니 주택이었다. 아직 초저녁임에도 지나다니는 사람 한 명 볼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네모난 창 사이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만이 그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주택은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며 위안을 주었다. 기억 저장소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어릴 때 집은 전형적인 주택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조그마한 앞마당이었다. 특히 이 시기가 되면 어머니가 심어 놓은 꽃들이 하나둘 피기 시작했다. 볕이 잘 드는 오후면 우리 집 든든한 지킴이 똘이와 함께 아무 바닥에 앉았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맞으며 봄을 탐색했다. 똘이는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좋은지 연신 눈을 껌벅거리며 졸았다. 시간은 내 앞에서 잠시 멈춘 듯 천천히 지나갔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들이 반가운지 이름 모를 곤충들은 인사하기 바빴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괜히 손으로 건드리면 순식간에 사라졌다. 꽃구경이 질릴 때쯤 눈은 청명한 하늘로 향했다. 파란 바다 하늘 사이로 회색 배 구름은 멋진 항해를 시작했다. 목적지는 어디었을까. 그 구름 배 타고 나도 따라가고 싶은 충동에 빠지곤 했다.

봄바람이 좋은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슬쩍 다가와 내 머리를 건드리기도 하고 마음속에 봄을 심어놓고 갔다. 나는 이유 모를 감정으로 괜히 설렜다. 그래서 봄에 상기된 사람 보며 봄바람 들었네라고 했나 보다. 바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모습을 달리했다. 좀 전에 만난 따스한 친구는 어디 갔는지 쌀쌀한 손님이 금세 찾아왔다. 그쯤이면 문틈 사이로 밥 냄새가 솔솔 풍겼다. 나는 크게 한번 몸서리치며 차가운 기운을 털어냈다. 이제는 다시 안으로 들어갈 시간, 졸린 눈을 껌벅이는 똘이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어둑한 주택가를 홀로 거닐며 잠시 옛 추억에 젖었다. 이제는 가물한 추억으로 남은 그 시간들. 지금 나에게 닥친 감당하기 힘든 순간도 지나면 흐릿한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사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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