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생각 |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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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문학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직면한 현실 부조리에 대한 회의? 아니면 염세적인 세계관? 아니라면 비판의식? 아니다. 단연 <인식>을 명징하게 하는 능력일 것이다.
비판적인 의식, 회의적이며 염세적인 세계 그 자체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부조리와 논리적인 오류를 넘어서는 것.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여는 것은 이 <인문학>이라는 소양을 통해 길러진다.
새로운 기술, 세계의 가치, 가치의 전환을 비롯한 사소한 아이디어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의 기본, 그 저변의 깊은 모든 곳에는 <인문학>이라는 뿌리가 있다. 역사, 예술, 과학, 정치, 경제 등 그 모든 것을 이루어나가는 존재가 사람인 까닭에 사람을 향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인문학은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 넓은 의미의 인문학이란 것은 심지어 인문학 그 자체의 방향성도 인도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인문학은 우리 삶의 중심 가치를 형성하는 근본이 아닌 부가적인 액세서리와 같은 것으로 취급받는 경향이 강하다. 가치(경제적 가치로서 value)와 값어치(price), 생산성(productivity), 효용성(utility)에 얼마나 부합하는가를 통해 인문학을 논한다. 이러한 관점은 이미 인문학을 바라보는 가치관(values)이 오염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인문학은 아무런 생산성, 효용성이 없는 곳에서도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은 필수적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지나가는 우리의 일상 속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 <무엇>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인식주체의 인문학적 소양에 달려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많은 것들, 인간의 삶, 특히 인간의 생각과 인식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모든 것이 사실 <인문학>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 근본을 형성하고 있다.
과학의 기술적 효용성과 그 시대, 사회의 도덕적 가치의 충돌 문제, 정치 혹은 고급 관료의 자리에서 일하게 되는 사람의 역사 인식문제, 사회 집단이 형성한 상식이라는 정의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하는 법을 적용, 집행하는 기관 의 관료들의 인식문제, 사실과 그 사실을 바탕으로 논조를 펼치는 언론 종사자들의 인식문제, 노동을 통해 생산하고 재화 및 자본을 획득하며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의 인식문제 등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 일상은 물론 사회적 일상을 지배하는 <가치>의 대부분은 도덕적인 엄숙주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하는 것에 의해 판단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인문학적 관점은 본질적으로 비판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당연히 <인간>이 기준 잣대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