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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환 Nov 06. 2016

존재 1

<낯선 여행자의 시간 | 개정판> 연재 #23

인간의 사상에 신의 등불을 비추어도 
‘영원의 자유’라는 팻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다...
인간의 사상은 신의 신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인간 존재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삶이라는 시계 위에서 서서히 죽어가며 사라라져 간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존재의 소멸성이라는 현실성, 즉 실존적 상황의 본질이며 진리이다. 이것을 포함한 많은 진리를 인간이 애써 외면하는 까닭은 그것들이 너무도 단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단순성의 심오함에 대해 성찰을 거치지 않고 자행되는 가장 흔한 야만이 바로 사상 검증이다.


모든 인간 존재는 누구나 숭고하고 거룩한 것을 찾고 그것을 탐구하며 성취할 권리가 있다. 사악하고 비루하거나 천박한 인간 존재라 하더라도 그에게도 이 숭고하고 거룩한 것을 추구할 자유는 있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관념의 샘으로부터 탄생하는 사상은 외부의 그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인간 존재만의 신성이다. 인간의 사상에 대해 불순한 혐의를 두는 것은 신에 대한 신성모독이며 나아가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보편적 인간성을 말살하려는 폭력이며 야만이다. 자유의 보편성이 파괴되면 영원의 신성도 곧 몰락하게 된다. 인간의 사상은 신성이 세운 불의 칼 뒤에서 수호되는 존재의 본질적 이상향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 존재 실존의 현실이란 바로 사상의 일부들이 사회 체제에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누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 존재하며, 존재자의 사상이 있으므로 세계의 현실 현상이 있을 수 있다. 사상은 다시 개별 존재자에게 그것의 의미를 통해 그 존재자 자신만의 삶의 목적을 향하도록 인도한다.


인간의 사상에 신의 등불을 비추어도 ‘영원의 자유’라는 팻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다. 이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존재의 현실성이며 본질이고 실재하는 진리이다. 인간의 사상은 신의 신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믿음 조차 부족하다. 주저하고 망설이고 불안해하는 원인의 대부분은 바로 존재자 자신에 대한 믿음의 결핍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의지의 나약함이라는 이유를 대기도 하지만 그것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힘든 인간 존재 내면 작용의 하나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불신은ㅌ 불안의 작용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불안과 의지의 작용,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불신이 갈등하고 조화를 이룰 때 존재자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이성적인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게 된다. 인간의 사상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인간이 존재하게 된 이후에 생각하게 되지만 사유의 운동으로 인해 삶의 대부분은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존재자가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면 사유로 인해 탄생한 사상은 존재자를 살아가게 한다.


인간 존재는 동물적 욕구와 감정적 욕구가 본능적 충동과 우연에 의해 엮여져 탄생한다. 이렇게 생겨난 육체가 있고 그 내면에 사상과 이성과 감정이 있고 더욱 깊은 곳에 존재자의 자아가 있다. 인간 존재의 육체 그 자체에 선과 악, 도덕적, 사상적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불경이다.


인간을 자기 한계를 부정하고 싶어 한다. 종종 극복이라는 무언가를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한계의 아래에 있는 존재자로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결핍과 열등감 때문이다. 무언가 극복해야 한다고 믿고 이것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가 무엇을 극복해야 할지 모른 채 ‘극복’을 외치는 한계에 부딪힌 가련한 인간 존재에 대해 나는 연민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을 보면서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이들 스스로가 ‘현실주의자’임을 자처할 때이다. 그들의 현실은 한계의 아래에 있고 그들의 이상은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이상을 추구하는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포기하라고 충고하는 현실에서 차라리 이상주의자들이 현실주의자들에게 이상을 가지도록 충고하는 것이 세상 모두의 평화를 위해 유익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현실주의자들의 모순은 자신들의 이상이 현실에 있으면서 늘 현실의 평온을 불안하게 하며 위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주의자들의 모순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이상 내지는 미래의 시간에 예정되어 있거나 보류되어 있으므로 평온한 동안에도 모순의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최소한 이상주의자들의 현실에 대한 위협은 현실주의자들의 직접적인 위험보다는 좀 더 보류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현실은 모순에 부딪혀 좌초되기 쉽다는 한계가 있다. 이상은 이러한 현실의 재료들을 연료로 삼아 미래에 이루어질 새로운 현실의 일부가 된다. 이상주의자들은 실현 불가능한 것만 몽상하지 않는 한 그들의 이상을 현실주의자들에게 양보할 필요가 없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충동적으로 욕망하는 것이 인간 존재이다. 또한 동시에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항해자이며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존재로서 여행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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