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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Dec 09. 2021

아침 9시 30분 여의도 지하철역에서 자고 있던 멀쩡남

사람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강화되고,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고 있다지만 오전 9시 30분, 여의도의 출근 시간은 여전히 직장인들로 붐빈다.


김포공항에서 여의도까지 급행으로 오는 지하철 9호선 문이 열리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그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중 나도 끼어 있었다.


내가 내리는 위치는 항상 작은 자판기가 있고 바로 옆에 작은 벤치가 놓여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출구로 이어지는 위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는 곳이다.


오늘도 내려서 계단으로 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몸을 트는 순간, 벤치에 옆으로 누워 팔을 베고 숙면을 취하고 있는 한 남성을 보았다.


분명 멀쩡하게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직업은 회사원인 것 같았다. 


어딘가 아파 보인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편안한 표정으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보통 나는 지나가다가 길거리에서 잠들거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경찰에 신고하고 도움을 주려는 편이다. 하지만 이 분은 누가 봐도 너무나 편안하고 잠을 자고 있었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전날 술을 잔뜩 먹고 술이 안 깬 상태로 출근을 하다가 벤치를 보고 안락해 보이는 공간에 누워서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누워서 잠이 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막 취업을 했을 때만 해도 회식자리를 거부하거나 먼저 나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술자리는 길어지고 과음하고 그다음 날도 힘든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치 술자리에서 선배분들과 늦게까지, 자주 어울리는 게 회사에 잘 적응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회식자리에 가지 않거나 적당히 있다가 들어간 사람들도 순간적으로는 선배들이 서운해했을 수도 있지만 회사 생활을 덜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좋은 관계를 맺은 덕분에 힘든 일이 있을 때 선배분들의 도움을 받고는 했지만, 그게 굳이 회식자리를 같이 했고 오랫동안 남아있었기 때문일까?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회식의 기회도 많이 없어져서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회식을 생활처럼 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결국 무엇을 위한 회식인가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


분명 좋은 성과를 거두고 의미 있게 축하하는 자리에는 빠지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매일의 넋두리를 늘어놓는 반복되는 회식자리는 지금 생각해보면 큰 의미는 없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 순간에는 너무나도 큰 의미라고 생각했지만.


문득 아침 9시 30분 여의도 지하철역 벤치에서 누워 자고 있던 멀쩡한 남자분을 보며 떠올랐다.


아, 내가 그렇게 밖에서 잠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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