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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Jan 16. 2022

그 학교를 나왔는데 왜 이러고 있어요?

세탁소 아저씨로 살아가는 것


회사를 다니며 아내와 시작한 세탁소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시선이다.


외국계 기업을 다닌다고 소개하고 번듯한 옷을 입고 다니면 그렇지 않던 시선들이, 세탁소 유니폼을 입고 전단지를 돌리는 것을 보면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바뀐다.


자격지심이 아니라 실제 그런 상황들이 있었다.


살고 있는 오피스텔을 매매할 때 인근의 부동산의 소개로 매매를 했다.


소개해준 부동산은 동네에서 제법 큰 부동산 사무소라 직원이 여럿 있었다.


출퇴근을 하면서 그 부동산 사무실을 오가며 인사를 하며 지냈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노트북 가방을 들고 차려입고 회사를 다니는 모습을 보며 가끔은 의아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줬다.


사무실 밖을 지나는 내 모습을 보면 사무실 밖으로 나와서 반갑고 인사를 할 정도였다.


나는 그냥 반갑게 대해주니 고맙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왜 그렇게 반가운지에 대해서는 늘 의아했다.


하루는 내가 퇴근 후에 세탁소 유니폼을 입고 전단을 돌리는데 그 부동산 사무실의 남자 직원을 마주쳤다.


그 사무실에서 유독 반갑게 대해주는 남자 직원 한 명과 여자 직원 한 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나는 반갑게,


"안녕하세요! 저희 가게 오픈했는데 한번 오세요!"


라고 인사했다.


기대했던 반응과는 달리 전단지를 한번 쓱 내려다보더니 '하!' 하고 비웃듯 보고 나를 지나쳤다.


평소 인사만 하는 정도였지 안부를 묻고 전할 사이는 아니었기에 가게 오픈한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고 서운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더 웃긴 것은 그다음부터는 인사를 해도 못 본 척 지나친다는 것이었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라 어이가 없었지만, 늘 필요 이상으로 반갑게 인사했던 것에 대해서 오히려 의아함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하루는 토요일 휴무일 때 가게를 보고 있었다.


마침 그 부동산의 다른 여자 직원분이 가게를 찾아왔다.


알고 온 것은 아니고 이불 빨래를 맡기러 온 것이었다.


그 남자 직원분한테는 굉장히 기분이 상했지만, 그 사람한테만 감정이 상했던 것이라 상관없이 그 여자 직원분께는 반갑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굉장히 인상 좋고 싹싹한 분이었어서 친절히 인사를 했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네, 이불 맡기면 얼마나 걸려요?"


하고 굉장히 차가운 어조로 이야기를 했다.


"네 보통 오늘 맡기시면 4일 정도 걸립니다."


나도 의아하긴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오래 걸려요? 얼만데요?"


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네 저희가 2일에 한번 수거를 하는데 오늘 아침에 이미 수거를 해가서, 내일 아침에 수거해서 세탁하는데 2일이 걸리고 그다음 배송일까지 하면 그 정도가 걸립니다."


왜 따지듯이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분히 설명을 해드렸다.


"최대한 빨리해주세요!"


상세한 설명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명령조로 이야기를 했다.


내 생각에는 나를 못 알아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그래도 놀란 부분은 워낙에 싹싹한 분이었는데 내가 부동산 손님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대해준 것이었나, 본인이 손님이 되면 이렇게 바뀌는 분인가 싶었던 것이었다.


뭐 이해는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다음은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라주시는 분이었다.


그분이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처음 가는 미용실에서 처음 오신 미용사 선생님이었는데, 본인이 몇 년 만에 미용사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서 손이 좀 떨려서 죄송하다고 나한테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귀만 자르지 말아 달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하며 약간 서툰 결과였지만 크게 싫은 내색하지 않고 "잘 잘라 주셨네요!"하고 기분 좋게 나왔던 적이 있어서 기억을 했다.


뭔가 굉장히 미안해하시며 소극적이지만 친절하다고 생각했던 분이었다.


그게 한 달 정도 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세탁소에 손님으로 왔다. 대략 부동산에서 일하시는 여자 직원 분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일수록 본인이 손님일 때는 이렇게 바뀔 수가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를 하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후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하루는 토요일에 혼자 가게를 보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왔다.


모르는 분이었다.


아들의 옷을 세탁하기 위해 가지고 오셨다.


굉장히 친근하게 이야기도 하시고 아들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셔서 기분 좋게 들어드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져오신 아들의 옷을 하나씩 꺼내서 검수를 하는데, 내가 다녔던 대학교의 학교 마크와 영문명이 새겨진 야구점퍼가 나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아드님이 이 학교 다니시나 보네요!"


아주머니는 굉장히 반갑다는 듯이 기분 좋게,


"네 맞아요 올해 들어갔어요."


그래서 나도 반갑게,


"아 그렇군요. 무슨 과에요?"


하고 물었더니,


"아 생활디자인학과예요."


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 저 같은 학교 후배네요! 저는 법학과 나왔거든요!"


하고 이야기를 했다.


순간 아주머니의 표정이 굉장히 복잡해 보였다.


아무 말씀 안 하셨지만 표정으로는 '그 학교를 나와서 왜 이러고 있어요?' 하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고, 나도 괜히 민망해서,


"다 해서 4만 원입니다"


하고 계산을 도와드렸다.


특별히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문득, 세상에는 보이는 것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본인이 판단한 정도로만 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간다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힘든 일이 될 수 있는지도 깨달았다.


나 역시도 누군가를 바라볼 때, 보이는 대로만 보고 대했던 적은 없었는지 그런 것 때문에 나의 태도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감정이 상하게 했던 적은 없는지 문득 뒤돌아보게 되었다.


예전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식품회사에 들어간 선배형이 있었다.


고등학교까지 미국에서 나와 한국의 유명 대학의 경영학과 출신의 나름 영어도 잘하고 공모전 수상 경력도 있는 나름 엘리트 이미지의 형이었다.


그런데 이 형이 다니던 식품회사에서 신제품을 출시하게 되었고, 신제품 출시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직접 보기 위해 대형 마트 시식 코너를 참관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마침 시식을 돕던 중년의 여직원 분이 잠시 창고에 짐을 가지러 자리를 비운 사이, 이 선배형이 지나가는 손님들한테 시식을 돕고 있었던 중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시식을 하고 가시면서 아이한테만 들리는 목소리로,


"너도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렇게 힘들게 일해야 하는 거야."


하고 이야기하는 소리를 선배형이 들었다고 했다.


선배형은 그냥 그 상황이 너무 우스워서 속으로 웃고 말았다고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해서 하는 일은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성공의 길목에 있는 사람들이 노력하는 모습은 때로는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꿈을 꾸며 희망차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비웃을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세탁소 아저씨'가 되기를 자청한 나 역시도 아내와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삶이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았고, 자랑스럽다.



*이 이야기는 제가 회사를 다니면서 작은 사업을 시작했던 스토리를 담은 내용입니다.

하나의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완성이 될 수 있도록 작성했지만, 이전 스토리가 궁금하시다면 이전 글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포르셰를 타고 다니는 옆팀 팀장님을 보고 창업을 생각하다 - https://brunch.co.kr/@xharleskim/117 

2) 시장조사와 창업 준비, 가맹본부와의 계약 - https://brunch.co.kr/@xharleskim/118 

3) 가게 간판을 달은 날 겪었던 문제 - https://brunch.co.kr/@xharleskim/120,

4) 처음 가게문을 열은 날 - https://brunch.co.kr/@xharleskim/126

5) 퇴근 후 가게 전단을 돌리던 일 - https://brunch.co.kr/@xharleskim/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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