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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Jan 14. 2022

처음 세탁소 문을 열은 날, 비가 왔다.

초조한 마음으로 지난 2개월 간 열심히 준비한 세탁소의 문을 열었다.


아내와 함께 집 앞 오피스텔 상가에 작은 프랜차이즈 세탁편의점을 창업하기 위해 지난 2개월 간 열심히 준비했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가게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가게를 열게 된 지라, 회사는 하루 휴가를 내고 개업을 하게 되었다.


손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깔끔하게 준비하고 가맹본부에서 준 유니폼 조끼를 입고 가게로 나갔다.


가게 뒤편에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갔다 와서 엄마의 일을 기다리며 놀 수 있는 작은 공간도 마련해두었다.


POS (계산대)용 컴퓨터도 구매하고, POS 시스템을 업체에서 제공한 가이드북을 따라 설치를 했다.


POS기기를 컴퓨터에 연결했는데 가이드북대로 설치가 되지 않는다.


가맹본부에 전화했다.


"저 POS 설치가 안 되는데요 가이드북 대로 했는데..."


"아 그러세요? POS 설치업체 전화번호 드릴 테니 한번 전화해보세요."


이윽고 가맹 본부 직원이 문자로 POS 설치업체 명함을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아, 가맹 본부의 역할이 이런 업체들을 그냥 연결해주는 식으로만 운영되는구나'


왠지 좀 체계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치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네 여기 크린 OO OO점인데요, POS를 설치했는데 설치가 안되네요 가이드북 따라 해도. 기기 인식이 되지 않아요."


"아 윈도 몇 쓰세요?"


"윈도 10인데요."


"가끔 윈도 10에서는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전 버전으로 다운그레이드 하셔서 해보세요."


사전에 안내되지도 않은 사항을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가게는 열어놓고 오픈한 상태.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컴퓨터를 다루는 것이 그래도 익숙 편이라 업체에서 안내한 대로 다시 설치를 해봤다.


여전히 POS기기가 컴퓨터에서 인식이 되지 않는다.


다시 업체에 전화를 했다.


"말씀하신 대로 윈도 다운그레이드 했는데 포트 인식이 안되네요. 이거 기기가 불량 아닌가요?"


"기기는 새 거인데 불량 일리가 없어요. 제대로 끼우신 것 맞으세요?"


본인들의 잘 못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컴퓨터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있는데 요새 이런 형태의 포트 케이블을 사용하는 기기는 거의 없다.


"네 제대로 끼웠고 똑같이 따라 했고, 윈도 다운그레이드 하라고 해서 다 했는데도 안됐습니다. 지금 저희 가게 오픈 첫날입니다. 손님 못 받고 있어요. 바로 오셔서 설치해주세요."


몇 번을 옥신각신하다가 업체에서 2시간 이내에 온다고 한다.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을 하면서 유통업체의 매장을 많이 가봤다. 당연히 이런 계산대는 수도 없이 봐왔고, 내가 직접 계산 업무를 한 적은 없지만 이런 계산대가 고장 나거나 작동하지 않는 경우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의 영업은 물건을 '파는 것'에만 집중했지 계산대 시설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가맹 본부라면 이런 것들은 문제없이 해주는 것이 역할이 아닌가? 가맹 점주가 아무 걱정 없이 매장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최소한 내가 생각하는 가맹본부의 역할은 그랬다.


'김 과장, 가맹본부 직원들에 너무 의지하지 마. 별로 기대 않는 게 좋아'


회사를 다니면서 가맹점주로 활동하며 성공한 옆팀 차장님이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2시간 남짓 시간이 흘렀고 POS 설치 업체에서 찾아왔다.


굉장히 귀찮다는 듯한 태도로 와서 인사도 않고,


"POS 업체예요."

하고 들어왔다.


컴퓨터를 성의 없이 툭탁툭탁 보고 포트를 연결해보고 컴퓨터를 몇 번 껐다 켰다 하더니,


"기기가 불량이네요. 교체해드릴게요."


라고 말하며 기기를 교체해줬다.


본인도 민망한지 서둘러 설치를 마치고는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휙 가버렸다.


어쨌든 이제 손님을 맞을 준비는 되었다.


사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 때에도 손님은 없었다.


마침 양가 부모님들이 개업을 축하한다며 화분과 함께 집에 묵은 세탁물을 잔뜩 갖고 오셨다.


회원등록을 하고 세탁물을 검수하고 등록을 하자 정말 개업을 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주변 상가에 돌릴 떡도 가지고 와서 떡도 돌리고 인사도 했다.


유명한 외국계 기업을 다니면서 세탁소 유니폼을 입고 떡을 돌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뭔가 쑥스러움도 느껴졌지만 뭔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도전을 한 우리 부부가 스스로 대견하다고 느꼈다.


어느새 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반가운 봄비였지만 겨우내 묵은 옷을 가지고 세탁소를 오려던 손님들에게는 방문을 미루는 데에 충분한 이유가 됐을 것이다.


손님은 많이 오지 않았고, 우리 부부는 초조한 마음으로 손님을 기다렸다.


밖에 간판도 있고, X배너도 설치해놓았지만 아직은 우리 가게가 오픈한 사실을 잘 모르겠지?

빗 속에서도 하나 둘 방문하는 손님들이 왔다.


아직은 서툰 솜씨로 물건을 검수하고 접수하면서도, 너무 능숙하지 않아 보일까 봐 긴장하면서 손님을 맞았다.


그렇게 비 오는 날 하루의 첫 영업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가게 문을 닫았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가게를 알릴 수 있을까?


첫날 가게문을 열었다는 뿌듯함보다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제가 회사를 다니면서 작은 사업을 시작했던 스토리를 담은 내용입니다.

하나의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완성이 될 수 있도록 작성했지만, 이전 스토리가 궁금하시다면 이전 글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xharleskim/117 - 창업의 계기, https://brunch.co.kr/@xharleskim/118 - 창업의 준비, 가맹본부와의 계약 - https://brunch.co.kr/@xharleskim/120, 가게 간판을 달은 날 겪었던 문제 - https://brunch.co.kr/@xharlesk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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