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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Jan 17. 2022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의식을 가져유?"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 밖에서 추가적인 수입을 만들어 보기 위해, 아내와 동네에서 살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프랜차이즈 '세탁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재고 부담이 없고, 가맹 본부에서 배송 및 수거를 통해 세탁 공장에서 모든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제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세탁물을 수거하고, 분류해서 접수를 하고, 세탁이 완료된 세탁물을 찾으러 오는 손님들에게 다시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 


가게를 시작하기 전에는 매우 간단해 보였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세상 어떤 일도 그냥 생각만큼 간단하지는 않기는 하다. 


세탁소를 운영하기 전과 후에 알게 된 "간단하지 않은" 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탁물을 분류하고 세탁 방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가맹 본부에서 사전 교육과 배포되는 가이드북을 통해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며, 실제로 세탁물에 부착된 세탁 방법을 보면서 실전을 통해 길러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나마 상대적으로는 간단한 편이다.


두 번째는 손님을 대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대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세탁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은 본인의 세탁물이 깨끗하게 세탁될 것이라는 서비스 '품질'에 대한 기대감과, 깨끗하게 세탁된 세탁물을 돌려받기를 기대하는 '시간'이 있다. 


이러한 기대감이 충족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러한 기대감에 못 미칠 경우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두 가지 기준 모두를 가게를 운영하는 점주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전적으로 가맹 본부에서 관리하는 세탁 공장의 능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가게 문을 열은 것은 3월 초였다. 


보통 세탁소의 성수기라고 할 수 있다. 


겨우내 사용한 이불과 두터운 옷들을 정리하기 전에 모두 세탁소에 맡기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매출을 많이 올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너무 많은 세탁물이 몰리면서 세탁 공장에서 세탁 시간이 너무 늦어지게 되는 점이었다. 


하필이면 그 해 꽃샘추위가 너무 심하게 오면서 3월에 때아닌 눈이 오기도 했다. 


세탁해서 옷장에 넣으려던 옷들이 다시 입고 다니기 위해 필요해진 것이다. 


보통 4일에서 늦어도 1주일이면 되던 겨울 옷에 대한 세탁이 2주가 넘도록 도착하지 않자 손님들의 항의 전화가 잇따랐다. 


사실 상황설명을 하고 사과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세탁을 중단하고 다시 갖고 와서 환불해달라는 손님까지 있었다. 


세탁공장에 쫓아가서 해당 세탁물을 수거해올까도 생각하여 세탁공장과 연락해보았지만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내 가게를 하고, 내 손님들을 대한다는 것에 다른 핑계를 댈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단순히 상황설명을 반복하면서 사과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가맹 본부도 속수무책이었고, 별도로 손님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혼자 고민하다가 같은 지역 내에 같은 프랜차이즈 세탁소를 운영하는 점주들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할 수 있는 조치가 없어서 마냥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2주가 좀 지나가 초기 물량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물량이 들어오자 손님들도 잘 세탁된 옷을 보고는 크게 화를 더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나의 책임이 아니라는 부분을 피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책임이 명확하게 나누어지는 업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이러한 모습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비즈니스라면 다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결국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직원과 오너의 차이라고 생각을 한다.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너무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본질은 같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대한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하여 발생된 문제에 대해 대기업의 회장이 결국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은 결국 그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정말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백종원 씨에게 물었다.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자 백종원 씨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직원들은 주인의식 못 가져요. 주인이 아니니까. 주인을 시켜주면 주인의식이 생기겠쥬." 


하고 말했다. 


맞는 이야기다. 


주인이 아닌데 주인의식을 갖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주인도 주인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너무 과한 기대라고 생각한다. 


백종원 씨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부분은 단순히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주인부터가 제대로 된 주인의식을 갖고 본인이 책임지는 리더십을 보일 때 비로소 직원들도 본인들이 해야 하는 업무에서의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하게 된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회사에서 말하는 주인의식 혹은 책임감은 주어진 일을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업무에 대한 노력과 시간이, 우리 회사의 고객들의 만족감을 주기 위해 쓰이고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고 의견을 내고 실행하는 것이다. 


수 없이 빗발치는 손님들의 항의 전화를 받았던 경험을 하고 나니, 그런 일이 사전에 없도록 미리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부분은, 무조건 문제가 발생한다 (If it can go wrong, it will go wrong).' 


대학생 시절 영어교육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함께 일하는 호주 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겨울 옷과 이불이 한 번에 몰리면 세탁기 간이 오래 걸릴 수 있으니 세탁물을 접수받을 때부터 안내를 하거나 세탁 기간을 미리 물어봤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부분을 생각하지 못한 이 가게 주인의 책임이다.  


진정한 주인이라면, 모든 문제가 발생 가능한 상황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그 문제 발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미리 준비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그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제가 회사를 다니면서 작은 사업을 시작했던 스토리를 담은 내용입니다.

하나의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완성이 될 수 있도록 작성했지만, 이전 스토리가 궁금하시다면 이전 글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포르셰를 타고 다니는 옆팀 팀장님을 보고 창업을 생각하다 - https://brunch.co.kr/@xharleskim/117 

2) 시장조사와 창업 준비, 가맹본부와의 계약 - https://brunch.co.kr/@xharleskim/118 

3) 가게 간판을 달은 날 겪었던 문제 - https://brunch.co.kr/@xharleskim/120,

4) 처음 가게문을 열은 날 - https://brunch.co.kr/@xharleskim/126

5) 퇴근 후 가게 전단을 돌리던 일 - https://brunch.co.kr/@xharleskim/127

6) 내 직업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시선 - https://brunch.co.kr/@xharleskim/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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