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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Feb 24. 2022

손절이 미학이 된 시대, 과연 손절이 최선일까?

손절.


말 그대로의 뜻은 손을 자른다는 의미로, 주로 노름판에서 노름을 끊지 못하는 사람이 손을 잘라내야 노름을 끊는다는 뜻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후 주식 “투자”가 일반인에게도 활성화되면서 일정 정도 이상의 손실 구간이 지나면 미련을 갖지 말고 팔아야 한다는 의미로 ‘손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이 ‘손절’이 마치 본인의 욕구를 조절하지 못해 일어날 과오를 방지하기 위한 하나의 긍정적 수단으로 포장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손절의 미학’이라는 책까지 나왔다. (나는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다만 ‘손절’의 미학까지 언급하게 되는 이 시대에 유감을 느끼는 것뿐이다.)


손절이 마치 아름다운 것처럼 말하는 시대. 손절에 미학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 친구 손절했어.”



친구를 손절하다니. ‘절교’의 뜻이겠지만, 친구와의 절교가 그렇게 한 순간의 결심만으로 가능한 것이고 누군가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만큼 떳떳한 것이 된 것이 언제부터일까?


애초에 ‘친구’이기는 했을까?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은 것만으로 공식적인 ‘친구’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절교’는 ‘Unfriend’라는 버튼만으로 가능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영단어를 만들어낸 것도 너무나도 창의적이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다 보면 일면식도 없지만 그 사람이 쓰는 글이 마음에 들어, 올리는 사진이 마음에 들어 친구이기를 바라고, 친구관계를 인정받으면 친구가 되는 인연들이 있다.


얼마 전 내 페이스북 “친구”가 올린 글을 보면서 나는 ‘손절’의 충동이 왔다.


그간 일면식도 없지만 그가 올린 진실된 글들이 내 마음을 울렸으며, 새로운 생각의 지평을 열어 주었기에 만난 적도 없는 그를 ‘리스펙’했었다.


하지만 최근 그가 올린 장문의 글을 보고 너무나도 실망했고, 나는 클릭 몇 번이면 이 사람과의 친구관계를 끊고 이 사람의 글을 나의 온라인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일면식도 없었기에 오프라인에서 마주친다 해도 서로 으쓱해질 사이도 아니었다.


그가 올린 글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가진 다분히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색’ 짙은 글이었다.


불편했다.


순간 ‘Unfriend’ 버튼을 누르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하지만 문득, 내가 이렇게 세상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닫다 보면 내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도 좁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부러 끝까지 읽기 힘든 그의 글을 끝까지 읽었다.


뭐라고 반박의 댓글을 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이미 많은 반박의 댓글이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반박의 댓글에는 글쓴이의 대댓글을 통한 반박이 이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글쓴이의 반박은 이미 Unfriend를 한 사람의 입장에서 쓰는 글처럼 느껴질 정도로 신랄했고, 나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 싸움을 지켜보기만 했다.



‘손절’은 손을 자른다는 의미다. 조절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충동을 이기기 위해 평범한 일상생활을 포기할 정도의 각오로 큰 것을 내준다는 의미다.


단순히 클릭 몇 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손절에 미학이 있다고 하는 것은 결국 100을 잃을 뻔한 것을 30 정도로 잃고 끝냈다는 것에 만족하라는 ‘합리화’의 논리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손절 이후의 결과는 보지도 않고, 나는 30을 잃었지만 갖고 있었다면 지금까지 100을 잃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불편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나 스스로를 뒤돌아보고, 내가 ‘손절’ 당할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마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를 불편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손절하는 외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손절을 미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당장 잃은 30에 대한 아쉬움보다도 내가 기대했던 +100을 못 가진 것에 대한 배신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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