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도 Mar 04. 2022

순두부 랩소디


“엄마 아빠 순두부 사러 다녀올 테니까 일어나면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여섯, 일곱 살 무렵 우리 가족은 단칸방에 살았다.

침실 겸 거실 겸 안방 겸 옷방 겸 작은 방안에 네 가족이 옹기종기 이불을 펴고 누우면 가득 차는 작은 단칸방이었다.


토요일 밤, 이불을 깔고 누워 자는척하며 아버지가 틀어놓은 오래된 TV에서 흘러나오는 아랑훼즈 협주곡과 (https://youtu.be/TLLXh61B78E) 서부극의 주인공들이 말을 타고 사막을 달리는 장면의 ‘토요명화’ 오프닝을 보며 잠들었던 추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그렇게 잠이 들고 깨어나 아침이 되면 이따금씩 부모님이 안 계시는 경우가 있었다.


어린 동생은 세상모르고 자는데, 간밤에 함께 잠자리를 했던 부모님은 온 데 간데없으셨다.

나도 어린데,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동생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어떻게 달래주나 생각을 한다.


그리고 너무나도 친절한 위치에 남겨져 있는 쪽지를 발견한다.



“엄마 아빠 순두부 사러 다녀올 테니까 일어나면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상냥한 엄마의 목소리가 나를 달래는 듯했다.


처음 한 두 번은 조금 무서웠던 기억도 있지만, 그 쪽지를 읽은 지 10분에서 15분 정도면 엄마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시고는 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는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아본 순두부를 냄비에 뜨끈하게 데워 우리 네 가족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다.




뽀얀 국물에 몽글몽글 순두부, 그 위에 엄마가 급히 만든 양념 간한 한 숟갈 끼얹으면 완벽하고도 특별한 아침식사가 완성됐다.


몇 번이고 그런 기억이 반복되자, 눈을 떴을 때 엄마 아빠가 남긴 한 장의 짤막한 쪽지는 내게 몽글몽글 순두부 아침을 기다리게 만드는 설렘이 되었다.






내 고향 경기도 양평, 그 안에 용문이라는 동네에는 내 친구네 집안이 하는 두부 공장이 있었다.


그리고  두부 공장에서는 순두부가 있었는데, 아마도  순두부 모두부를 만들기 전에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소량 파는 아침 일찍 가야만   있는 한정판 같은 품목이었던  같다.


그렇기에 그 순두부를 구하기 위해 어린 나와 동생이 잠든 사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두 부부가 두부공장에 다녀오셨을 그 마음이 내게도 느껴진다.





문득, 그 순두부가 나의 엄마 아빠한테는 어떤 의미였을까 싶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순두부는, 아버지의 고향인 강원도의 영동지방에서 간간히 드실 수 있었던 별미 초당 순두부와도 닮아있지 않았을까 싶다.


영상통화도, 카톡으로 사진 한 장 보낼 수 없던 시절의 순두부 한 그릇은, 아버지에게 멀리 타지에서 고향을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이 아니었을까?




퇴근길, 동네 슈퍼에 들러 ‘초당 순두부’ 한 봉지를 샀다.


운이 좋으면 두 봉지, 운이 없으면 아예 살 수가 없는 순두부다.


그 시절의 설레는 아침의 기억으로, 눈에 보이면 살 수밖에 없는 순두부다.



그 순두부를 한 숟가락 떠먹고 나면, 일곱 살 시절 아침에 봉지 한가득 순두부를 들고 오실 부모님을 기다리던 설레는 마음이 느껴진다.





“엄마 아빠 순두부 사러 다녀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퇴근길에 운 좋게 사온 순두부 한 봉지, 아침에 한소끔 끓여 아이들과 함께 먹어야겠다.


너무 맛이 심심하다면 급히 양념간장도 만들어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12월 30일 오후 5시 속초 중앙시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