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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Sep 24. 2019

매화, 기찻길, 미나리, 삼겹살?

매화가 피는 계절, 미나리와 삼겹살

경남 양산의 원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밀양과 김해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줄기가 양산으로 흘러드는 지점에 있는 작은 마을로, 매실, 딸기 등의 작물이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매년 3월이 되면 매화가 마을 가득 피어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기도 한다. 진해의 벚꽃 축제에 묻혀 사실 수도권 쪽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매화는 벚꽃과는 다른 매력이 있어 이쪽 지역에서는 매우 유명하다.

나 역시 평생 처음으로 경남 지역에 거주하게 되면서 올봄, 처음으로 매화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얼핏 보면 벚꽃과 꽃 모양은 비슷한 듯하면서 벚꽃보다는 진하고 고운 색의 매화는, 벚꽃보다 먼저 피어난다. 벚꽃이 이미 와버린 봄의 나른한 여유를 즐기는 듯하다면, 매화는 긴긴 겨울의 추위를 간신히 기다렸다는 듯 더 반갑고 힘차게 피어나 따뜻한 봄이 왔다는 소식을 알리는 느낌이다.


이러한 매화만의 아름다움과 함께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미나리와 삼겹살의 조합이다. 매년 3월 매화꽃이 피는 무렵이 되면 원동에서는 한창 미나리를 수확하는 계절이 된다. 미나리가 사시사철 자라는데 왜 굳이 3월이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봄이 미나리의 제철이고, 제철의 미나리가 삼겹살과 어울릴 줄 누가 알았으랴.


낙동강 줄기를 따라 순매원이 보이는 언덕을 넘어 야트막한 평지가 나오면 미나리 밭과 하우스가 보인다. 1호, 2호, 3호 숫자들이 붙어 있는 팻말과 하우스가 보이면 마음에 드는 숫자의 하우스를 가면 된다. 논 재배로 수확하는 미나리인데 하우스에는 무엇이 있는지? 바로 평상과 좌식 식탁들이 놓여 있고, 그 안에서는 갓 재배한 미나리를 한창 물에 씻고 손질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미나리를 사면 평상에 앉아 가져온 고기를 먹을 수 있고, 바로 옆에서 고기를 살 수도 있다. 식당은 아니기 때문에 조리해주거나 하지는 않지만, 어떤 음식이든 가져와서 먹을 수 있다. 음료와 주류도 반입이 가능하다.

나는 삼겹살을 가져가서 구웠다. 옆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니 삼겹살에서 나온 기름에 미나리를 익혀서 삼겹살과 함께 먹는 것이 보였다. 고소한 삼겹살과 쌉쌀한 미나리의 향이 어우러져 너무 맛있었다. 미나리는 질길 줄 알았지만 전혀 질기지 않았고, 살짝만 익혀도 아삭아삭한 식감과 삼겹살의 식감이 잘 조화가 되었다. 미나리의 이파리 부분은 기름에 많이 익혀 먹으면 기름을 머금어 고소한 맛과 미나리 향이 배가 됐고, 줄기 부분은 살짝만 익혀 삼겹살에 싸서 먹으니 식감의 조화가 좋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삼겹살과 미나리를 먹을 생각을 못 해봤는데, 정말 신세계였다. 알고 보니 경상도 지역에서는 원래 삼겹살과 미나리를 먹는 식문화가 있다고 한다. 하우스에서 준비해서 먹는 것이 번거롭다면 주변 식당에서도 삼겹살과 미나리를 판매하기도 하니 참조해도 좋을 것 같다. 기차를 타고 원동 기차역에서 내려 바로 옆 순매원의 매화를 구경하고 근방의 식당에서 미나리와 삼겹살을 즐기고 다시 기차를 타고 낙동강 경치를 즐기며 오는 것도 내년 봄에는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코스다. 내년 봄, 벚꽃이 피기 전 먼저 봄을 느끼고 싶다면 원동의 매화와 미나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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