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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Sep 05. 2022

스타트업의 업무 방식을 배우고 싶다면?

스타트업에서 일한 지 3일째.

외국계 기업에서 십 수년을 일한 내게 스타트업에서의 하루하루는 매일이 새롭다.


스타트업을 오기 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스타트업 정신’을 바탕으로 ‘스타트업 업무 방식’을 배우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실제로 글로벌 본사에서는 스타트업의 의사결정 방식을 시스템화하여 직원들에게 교육을 하기도 했고, 나는 그 교육을 듣고 코치로서의 교육까지도 받은 적이 있다.

이 교육의 본질은 결국 ‘소비자의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하라는 것이다.


보통 대기업에서 사업계획을 짜고 실행을 할 때에는, 기획하는데 엄청난 시간, 노력 그리고 비용을 들이지만 실제로는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 이유는 대개 사업 계획 당시에 사업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았거나, 명확한 소비자 그룹을 타깃으로 특정하지 못했거나, 소비자 그룹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내가 회사에서 배웠던 툴은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사업 목적을 매우 뾰족하게 구체화시키고, 우리가 누구를 타깃으로 하는지를 명확하게 특정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방법들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큰 회사에 다니다 보면 회사 내부의 여러 의견들을 반영하다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무나 많은 데이터에 매몰되기도 하고, 스스로의 아이디어에 심취하여 소비자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회사에서 이런 내용을 배우고 나니, 아 이 회사에서는 정말 업무 방식을 스타트업처럼 변화시키려고 하는구나 하는 의지도 느껴져서 좋았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오고 나니, 내가 교육을 받았던 내용들은 스타트업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들이었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어떠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에서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과연 이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하면 좋은 일인 것인지 (Must Have or Good to have)를 신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사업의 목적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뾰족하게 우리의 계획을 다듬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계획이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큰 회사에서는 사실 ‘하면 좋은 일 (Good to have)’ 정도의 일도 그냥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하면 좋은 일 정도의 일도 할 수 있는 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회사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꼭 해야 하는 일 (Must have) 조차도 할 사람이 빠듯하다. 꼭 해야 하는 일 조차도 꼭 해야 하는 범위만큼, 꼭 필요한 노력만큼만 들여야 할 정도로 투자를 해야 한다.


1개월 전인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회사에 잠깐 왔다가 우연찮게 제품 디자인 수정 미팅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요구 사항 몇 가지를 디자인팀과 이야기하고 논의를 했다. 나는 속으로 ‘최소 한 달은 걸려야 제품에 반영이 되려나?’ 생각을 했다.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라면 한 3개월쯤 걸려야 테스트 제품 (Mock up design sample)을 받을까 말까지만 스타트업이니까 한 달이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리고 한 2주 뒤, 회사를 방문했을 때 그 디자인은 완벽하게 제품에 적용되어서 테스트 제품이 아니라 온전히 기능을 하는 버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깜짝 놀라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만들 수 있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우리는 지금 이 제품이 제일 중요하니까 이 거에만 매달려 있어요. 당연히 2주면 충분히 만들죠.”


2주 전에 전달한 피드백은 이전 버전 제품을 들고 제품의 실 사용자인 의사 선생님들의 테스트를 거쳐 받은 피드백들이었다.

제품을 실제 사용하는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듣고 바로 반영하는, 회사 교육시간에 들었던 내용들인 것이다.


이렇게 스타트업에 오고 나니, 내가 회사에서 받은 ‘스타트업의 업무방식’을 배우자던 교육들이 얼마나 허울만 좋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스타트업의 업무 방식을 실행하고 싶다면 그만큼의 절박함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만큼의 절박함을 갖고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있을까?

그러한 절박함은 결코 실무자들에게만 강요해서는 안된다. 실제 의사 결정을 하는 관리자와 임원들이 불편함을 무릅쓰고 진정으로 타깃 소비자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것을 위해서만 결정해야 한다.


오늘도 회사에 앉아 회사 사람들과 오프라인/ 온라인으로 주고받으며 빠르게 진행한 내용들을 되짚어 보면,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얼마나 수많은 메일과 미팅, 그리고 요청 절차들을 거쳐야 했을까 생각한다.


스타트업의 업무 방식을 배우고 싶다면 지금까지의 업무 방식을 일부 바꾸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말 스타트업의 업무 방식과 문화가 부럽다면, 지금의 업무 방식은 완전히 버리고 바꾸어야 한다.


물론 그런 결정은 절대로 쉽지 않다.


스타트업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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