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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Dec 20. 2022

지하철에서 신문 읽는 할아버지

가을부터 겨울에 입을 겉옷을 살까 하고 옷을 검색했다.


그 이후로 내가 보는 모든 소셜미디어에서 패션과 관련된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고자 했던 옷의 범위를 넘어 나중에는 영국 왕실에서 인정받았다는 체크무늬의 셔츠부터 소가죽 수공예로 만들었다는 멋들어진 가방의 광고까지 나를 유혹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패션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옷을 만들어 팔고 사고 입고 있다고 느껴졌다.


얼마 전 강아지를 한 마리 입양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아지와 관련된 정보들을 몇 번 검색하고 나니, 내게 보이던 모든 패션 광고가 모두 강아지 관련 용품 광고로 변했다.


마찬가지로 애견 관련 시장이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최첨단의 용품들이 마치 이 애견용품을 쓰지 않으면 강아지가 위험에 빠질 것처럼 하면서 나를 유혹했다.


광고만 보더라도 강아지의 고관절 탈구가 왜 생기는지, 자주 강아지 손발을 물로 씻기면 습진이 올 수 있다는 지식을 갖게 되었다.



출근길 지하철을 탔다.


내 옆에는 평소에 자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는 연령대의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한분이 신문을 읽고 계셨다.


어린 시절 나도 아버지를 따라 교양을 쌓는다며 읽었던 적이 있지만, 매일 인터넷으로만 뉴스를 보는 내게 활자 인쇄 신문은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문물이었다.


할아버지가 보고 있은 신문은 메이저급 신문인데, 보고 있는 페이지는 ‘오늘의 외국어 회화’였다.


짧은 대화문을 국문과 영문, 중국어, 일본어로 구성한 코너였다.


외국어를 자주 쓰실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3개 국어나!), 문득 내가 매일 여러 채널을 통해 습득하는 얕은 지식들이 얼마나 편협한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 아는 만큼 보는 것‘보다 ’ 본만큼 알고 싶다 ‘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해왔다. 무엇을 알고 나서 경험하고자 하면 흥미도 생기지 않고, 아는 것만 보게 된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것을 계속 보면 호기심 때문에 더 넓게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기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마 신문의 처음부터 끝을 샅샅이 보시고 계셨던 것 같다. 내가 지하철을 타자마자 잽싸게 게임을 켜는 동안 할아버지는 ‘앞서가는 테크 기업이 불황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전면 기사를 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


나는 테크 기업에서 글로벌 시장을 타깃 한 전략을 짜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시는 것 같아 괜히 겸연쩍었다.


지식의 편식, 그것은 결국 시야를 편협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단절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문득 들었다.


음식을 편식하지 않듯 지식도 편식하지 말아야겠다.


아직 신문배달이 있나 모르겠다.


눈 오는데 신문 배달 말고 가끔이라도 편의점에서 한부씩 사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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