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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Feb 17. 2023

겨울이 가기전에, 겨울 소주와 말똥 성게알

몇 년 전, 우연히 알게되어 마시고 꽤 오랫동안 마셔온 소주가 있다.


‘겨울 소주’


’그해 겨울에 빚어 다음 겨울에야 술이 완성되는 기다림‘


이라는 문구가 있다.


기본 원료가 ‘정제수, 증류원액 (쌀 국내산, 국, 효모, 효소)’이 전부인 술이다.


향을 맡으면 누룩의 향이 너무 짙지 않게 옅게 코 끝에 맴돈다.


너무나도 부드러울 것 같은 향이지만, 막상 한모금 마시면 혀에서는 부드러운데 목구멍 깊이까지 이내 강한 소주의 맛이 치고 올라온다.


눈 덮인 겨울날 창 밖을 보며 포근한 느낌이 들다가도 막상 문 밖으로 나서면 매서운 추위가 느껴지는 그런 겨울의 맛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술을 마실 때 누구와 함께 마셔본 적이 없다.


왠지 모르지만 집에서 아이들과 아내가 일찍 잠이 든 밤 혼자 겨울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한 잔씩 마셨던 술이다.



오늘은 그럴싸한 안주도 준비했다.


일본말로 ‘우니’라고 하는 성게알이다.


남쪽지방에 살 때는 ‘양장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늦 겨울에 먹었던 ‘양장구’는 씁쓸한 맛이 강했다.


식당 아저씨는 봄까지는 ‘양장구’가 쓴 맛이 있다고 했다.


오늘 준비한 말똥 성게알도 쓴맛이 난다.


사실 나는 부드러운 크림맛의 성게알을 좋아하는데, 왠지 ‘양장구가 봄까지 쓰다’던 주인 아저씨의 표정이 왠지 진정한 ’양장구‘의 맛도 모르는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던 시선이 문득 떠올라, 쓴 맛도 즐겨보려고 한다.


겨울 소주의 뒷 맛은 믿기 어렵겠지만 약간 우유의 부드러운 맛이 느껴진다.


못 믿겠다면 겨울 소주를 마시고 삼킨 후에, 차가운 물을 마시면 우유의 고소한 부드러운 맛이 느껴진다.


쓴 맛의 소주를 마신 후의 느낌이겠지만, 지금껏 내가 겨울 소주를 안주 없이 물만 떠놓고 마신 이유이기도 하다.


겨울 소주를 지금껏 4명 한테 선물한 적이 있다.


힘든 시절 나를 응원해준 선배에게 ‘같이 한잔 못해 아쉬워서 같이 한잔 하고 싶은 술’이라며 보낸 적이 있고, 외국인 회사 동료들과 회식 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해 한국에도 자랑할만한 술이 있다며 호기롭게 내가 선물해주겠다고 하고 선물을 한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몇 년 전 동생의 생일날 보낸 적이 있다.


선물을 줬던 그들은 다들 내 주변에서 손 꼽는 애주가들이라 내심 좋은 피드백을 기대하고 줬는데,  술 맛이 어땠는지 후기는 들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겨울 소주를 샀다.


겨울이 가기 전에 오랜만에 겨울 소주를 혼자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겨울 소주는 처음에는 너무 쓴데, 점점 부드럽게 넘어간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잔을 따라 홀짝 홀짝 마시면서 한잔을 거의 비울 때 쯤이 되자 부드럽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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