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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Dec 14. 2020

두 도시의 두 남자 이야기

넷플릭스 시리즈 '루크 케이지'와 '애틀란타'

어려서부터 지루한 걸 싫어하는 나는,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고 다른 책을 읽기보다는 여러 권의 책을 비슷하게 시작해서, 비슷하게 끝내는 것을 좋아한다. TV 채널도 마찬가지라 채널을 이것저것 돌리면서 정신없이 보는 나는 아내에게 그다지 함께하고 싶은 TV 시청 파트너는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가끔 나는 아내가 먼저 자러 들어가면 보고 싶은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그야말로 소파 위의 감자가 되어 채널 재핑을 한다 (Couch potato TV channel zapping).


뉴욕의 슈퍼히어로, 루크 케이지. 애틀랜타의 루저 언. 둘의 공통점은 미국에 사는 흑인이라는 것 밖에는 없다. 할렘의 무지막지한 갱단에 홀로 맞서 싸우는 루크 케이지에 비해, 나이 들어 철없는 사촌 형 래퍼 페이퍼보이에게 빌붙어사는 언은 제대로 된 일상조차도 버겁다. 내가 왜 이 두 시리즈를 동시에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평소에 힙합을 비롯한 흑인 음악을 오랫동안 좋아해서 막연하게 좋아하는 음악들이 나올 것 같은 시리즈 두 개를 골라서 보게 된 것이다.  


루크 케이지는 그야말로 방탄 (Bullet Proof) 몸을 지니고 센 힘을 지녔지만, 본인이 슈퍼 히어로서의 자각은 없었던 전형적인 초기 슈퍼히어로의 모습이다. 믿고 따르고 가까이 의지하던 소중한 사람들과 상처로 인해 개인적 원한이 트리거가 되어 악에 대항한다는 진부한 구성은 뻔하지만 너무나도 재미있다. 뻔한데 왜 재미있을까?


배경은 뉴욕 할렘. 당연한 말이지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뉴욕의 모습은 너무나도 좋아하는 영화 '대부(Godfather)'의 뉴욕과도 오마주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의 멘토 역할을 하는 '팝(POP)'이 운영하는 바버샵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단골처럼 나오는 배경이며, 주인공 루크 케이지는 이 곳에서 엉클 팝이 자른 머리카락을 쓸어 담아 치우는 역할로 처음 시작을 한다.  대부의 주인공 돈 꼴레오네나 로키가 아닌 사람은 외상으로 이발을 할 수 없다는 표현은, 마치 뉴욕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느껴지는 듯 현실성을 더한다 (물론 뉴욕에 오랫동안 살던 사람은 너무나도 전형적인 미쟝셴이라고 진부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갱단의 두목은 어두운 사무실에서 피아노를 재즈 스타일로 너무나도 멋들어지게 치며, 동부 힙합을 대표하는 뉴욕 출신의 래퍼 '비기스몰즈 (Biggie Smalls)'가 왕관을 쓰고 있는 그림 앞에 서서 본인이 할렘의 왕임을 과시한다. 이런 배경에서, 이런 장면에서, 이런 인물 구성으로 슈퍼히어로물이 나온다고? 중학생 시절부터 힙합 광팬인 나에게 이보다 더 흥분되는 설정은 있을 수 없다. 그렇게 루크 케이지 시리즈를 시작했다.


남부 힙합의 메카, '애틀란타'. 명문 프린스턴 대학 출신의 찌질이 주인공 '언'. 이름은 '언(Earn)'이지만 얻고 있는 것보다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을 만큼 가진 것이 없어 보인다. 왜 명문대학 출신이 이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앞날이 창창하지는 않아 보이고, 앞날이 창창할만한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하는 일은 정말 잘 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만 손대며 역시나 잘 안되고, 헛된 희망은 실패와 좌절로 돌아가며, 가족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본인에게도 실망을 한다. '저 정도로 미국에서 흑인의 삶이 불공평하고 핍박받는 삶일까?' 싶을 정도로 '언'의 삶은 부정적이기만 하다. 너무나도 많은 부정 속에 작은 긍정의 불씨를 살려 삶을 밝혀나가기 위한 '언'의 모습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뭔가 위트가 있게 내용은 너무나도 무겁지 않고, 그걸 받아들이면서도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언'의 모습은 계속 보고 있게 만든다.  


슈퍼히어로의 삶을 살기로 한 '루크 케이지'는 슈퍼히어로에 걸맞게 '히어로 슈트'를 갖게 된다. 검은색 후드 재킷이다. 후드 재킷을 입고 신나게 총알을 맞고 나면 피 한방울 안 묻고 잔뜩 총알구멍이난 후드 재킷이 '히어로 슈트'가 되는 것이다. 무수히 날아오는 총알은 할렘의 시민들이 받는 핍박이며, 그걸 모두 막아내는 루크의 상징인 셈이다. 총알도 튕겨내는 '블랙 팬서'의 비브라늄 슈트와는 또 다른 의미를 준다. 모든 것을 갖고 자신의 존재 의미와 책임감을 알고 완성된 히어로로써의 '블랙 팬서'와 루크 케이지는 여전히 '흑인'이라는 공통 점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언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여전히 '흑인'에게서 '히어로'가 나온다는 사실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루크 케이지'의 현실적 오마주를 마주하면서도 이에 익숙해지면 다시 히어로물의 뻔한 구성과 스토리 전개에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애틀란타'를 보면서 지독한 현실 속의 주인공의 지질함을 보며 균형을 찾는다. 마치 후라이드 치킨을 먹다가 느끼할 때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 같은 존재랄까. 그러다가도 지독한 현실과 어두운 미래에 대한 답답함으로 다시 속 시원한 슈퍼히어로의 활약을 보기 위해 루크 케이지를 본다.  


언제나 이상만을 바라보는 것은 현기증 나는 일이며, 현실만 보는 것도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일이다. 그에 반해 현실이 반영된 이상은 참 아름답게 느껴지며, 그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 삶의 건강한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참 한쪽으로 치우쳐진 두 시리즈물을 공교롭게도 같이 보게 되면서, 절대 같은 '세계관'에서 담길 수 없는 두 주인공이 만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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