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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Jan 06. 2021

한 달 안에 이사 가기 프로젝트

이것은 각본 없는 드라마

오늘 날짜는 1월 5일. 부산 근교에 살고 있는 나는, 3월 1일 자로 서울로 발령이 난다. 사실상 발령은 확정이지만 정식 공고는 내일 1월 6일에 나올 계획이고, 정식 발령일자는 3월 1일이지만 실제 업무 시작은 2월 15일이 될 예정이다. 2월 15일 이전에 이사를 가고 1주일 정도 휴가를 내어 미리 집 정리를 하고 홀가분한 상태로 새로운 업무를 시작한다는 것이 이상적인 상황. 그렇다면 한 달 남짓 동안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결론이다. 수도권에 지금 시기에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경력적으로 정말 하고 싶은 업무이고, 양가 부모님을 비롯 가족들이 수도권에 모두 계신 상황에서 언젠가 한 번은 겪을 일.


우리 가족의 이사 가기 프로젝트, 한 달안에 이사 가는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0. 얼마나 쓸 수 있니

일단 우리에게 얼마 정도의 돈이 있을지 정리를 했다. 현재 전셋집의 보증금과 모아둔 돈 약간 하면 약 2억 정도가 가능한 금액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대출로 충당해야 한다. 얼마까지 대출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2억에서 최대 3억 정도가 매월 이자와 원금을 갚으며 생활비를 할 수 있을 수준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면 목표 금액은 4억에서 5억 사이. 그 밑으로 구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대략적으로 서울과 가까운 외곽지역에서 눈으로 대략 본 시세는 그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게 가용자금을 아내와 협의했다.


1. 우리가 살고 싶은 집

결혼하고 만 7년 동안 구축 빌라에서 시작해 오피스텔, 홍콩의 살인적인 월세 가격의 아파트, 지방의 신축 아파트까지 이미 4개의 집에서 3번의 이사를 경험한 우리 부부는 사실 주거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을 많이 해왔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우리 가족에게 맞는 주거지가 어디인지, 어떤 곳에서 삶의 만족도가 높았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공감대는 꼭 정확하게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번에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의 조건을 나열해봤다. 1) 초등학교와 가까운 아파트일 것 2) 대중교통으로 나의 직장까지 출퇴근이 가능할 것 3) 외곽으로 가더라도 가급적 신축 아파트로 찾아볼 것 정도로 요약이 되었다. 그렇게 정리해보니 대략적인 지역까지도 결정이 되었다.


2. 순서 정하기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자금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현금 유동성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정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나가고 싶은 날짜는 정해졌지만 1) 현재 전셋집이 나가고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타이밍 2) 그에 맞추어 우리가 이사 갈 집과의 날짜 조율 3) 해당 이사 갈 집의 전세담보대출 금액과 가능성 등 이렇게 3가지 단계가 우리의 자금 순환을 위해 순차적으로 확정해야 할 부분이었다.


3. 지금 할 일과 나중에 해도 될일, 노력해서 될 일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일

 1) 지금 할 일

 - 당장 집주인분에게 연락해서 우리가 나가야 함을 알렸다. 작년 8월 2년 계약 연장을 해서 아직 만기일은 1년 반 이상 남았지만 우리가 전세계약 갱신하자마자 이 지역 전세 가격이 급등해서 손해 아닌 손해를 보신 집주인분 입장에서도 좋은 기회가 되실 것 같았다. 그렇게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을 내놓는 것이 가장 먼저 한 일이었고, 새로운 세입자나 매입 후 입주자의 입주 일정이 우리가 구할 집의 주인과 협의해야 할 입주 일정이 될 것이다.

 

- 우리가 대략적으로 정한 지역에서 아파트 단위로 가용자금 안에서 매물 목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략적으로 입주 가능 시기가 우리와 맞는 매물과 기존 융자금, 배정 초등학교와 평수, 지하철역과의 거리와 출퇴근 시간, 초등학교까지의 도보 거리 등 우리가 최종 선택 시에 판단하기 위한 정보들을 정리해두었다. 그리고 우선순위들을 정했다.


- 몇몇 아파트 매물의 부동산에도 문의를 했다. 사실 코로나 상황에서 자주 방문이 불가하기 때문에 부동산을 통해 해당 매물에 대해 유의해야 할 점이나 인터넷 상에 나와있지 않은 집의 상태나 조건에 대해서도 문의를 했다.


- 혹시라도 융자가 낀 매물이 있을 경우 전세대출로 부족한 금액에 대한 신용대출을 받을 경우 어떤 상품을 사용할지에 대해서도 정보를 물색해놓았다.


2) 나중에 할 일

 - 나중에 할 일은 직접 방문해서 집을 보고 결정하는 일. 매물이 정해지면 대출을 진행하는 일. 결정되는 지역에서 초등학교과 유치원에 연락하여 입학 신청을 하는 일 등은 지금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 놓지만 실행할 수는 없는 일들이어서 일단 해야 할 일 목록에만 넣어 두었다. 하지만 그때 빠른 결정을 하기 위해 모든 정보 수집에 대한 내용은 지금 할 일에서 최대한 준비하기로 했다.


3) 노력해서 될 일

- 정보 수집을 통해서 와이프와 매물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우리가 가용자금을 두었지만 매물 사이의 가격 차이는 있고, 가격이 같다면 평수나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매물 간의 우선순위, 아파트 간의 우선순위, 비용과 평수 위치 간의 우선순위를 최대한 합의했다. 지금 사는 전셋집 계약이 완료되어 입주 날짜가 확정이 되면 나 혼자 올라가서 매물을 하루 만에 모두 보고 바로 결정해서 계약까지 하기로 했기 때문에 최대한 유선상으로는 우리가 생각했던 범위에서 합의한 우선순위를 통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보고 정하자'는 당연한 거지만, 보고 나서 다른 결정 요소 중에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금액 범위는 최대 얼마까지로 하되, 크기는 최소 어느 정도로 하고, 만약 같은 비용에 다른 크기가 접근성이 다를 경우에는 크기가 작더라도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약간의 접근성으로 같은 크기의 매물이 비용차가 얼마 이상 날 경우에는 접근성을 타협하는 것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이렇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지만 이번 이사 가기의 중요 요소는 '빠른 의사 결정'이기 때문에 의사 결정에 필요한 현재 수집 가능한 모든 정보를 통해 의사 결정을 모의로 해보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런 일들은 노력해서 좋아질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노력해서 하고 있다.


4) 노력해도 안될 일

- 온라인으로 매물을 보다 보면 견물 생심이라고 좀 더 돈 내면 좋은 매물들이 보인다. 정말 '영끌'을 해서라도 매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서울 안에서 살고 싶다 등의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의 우선순위는 정해진 시간 안에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최대한 우리 가족이 같이 한 번에 움직이고 싶고, 미리 합의한 결정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무리한 자금 조달에 대한 생각이나, 급등한 시세와 정부의 정책이 바뀌는 것을 기대하는 등의 일들은 어차피 지금 당장 노력해도 될 일이 아니니 최대한 접어두기로 했다.


5) 노력해도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노력하면 될 수도 있는 일

- 날짜는 다가오고 전셋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연말 연초가 껴서 더욱 그렇겠지만 우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주인분이 매물을 내놓은 부동산에도 연락해봤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네이버 부동산에도 매물이 올라와있고, 내 재산도 아닌 터라 왜 이렇게 가격이 비싼지 등은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바라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데 마침 오늘 한 명이 찾아와서 집을 보고 갔다. 안타깝게도 함께 본 다른 매물이 조건에 더 맞아 결정하고 갔다고 한다. 이 사람도 우리처럼 연말부터 연초 되면 갈 집을 알아보다 바로 와서 결정하고 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사람이 더 있어야 하는데 더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 가만히 있자니 괜히 초조하고, 뭔가 하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그때 문득 생각난 것이 지역 카페에 글을 올려보자 였다. 마침 지역 카페에도 부동산 매물을 올리는 게시판이 있었고, 간단한 정보와 함께 글을 올렸다.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마침 문의를 한 사람이 있어 내일 아침에 부동산과 연결해주기로 했다. 이 분도 급히 집을 구해야 하는 분인 것 같고, 잘 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노력해도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노력하면 뭔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또 얼마나 진척이 있을지 모르겠다. 모쪼록 이번 주 안에는 결정이 되어서 주말에 바로 혼자 올라가서 매물을 보고 계약까지 하고 오면 좋으련만. 코로나 상황에 부동산 시장도 비정상적인 상황에 급박하게 이사를 해야 하는 정신없는 시추에이션. 어젯밤 잠들기 전 아내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래도 우리 두 달 뒤에는 새 집에서 잠들게 될 거야' 하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되겠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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