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멜리싸 Jun 14. 2024

한국인 여자와 중국인 남자(1)

나의 입장 이야기

이혼을 했다.

이혼을 하고 나서도 1달 이상은 같이 있다가, 결국 사소한 일로 말다툼이 났는데

그는 그 길로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그렇게 쉬웠던 이별이었다.


중국인인 그를 처음 만나고, 

나는 늘 그에게 한국적 사상과 문화, 풍습, 법률제도 따위 등을 항상 인지 시켜주려고 했고,

한국인의 배우자로서 항상 조심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할 것을 강요 아닌 강조를 했지만

매번 돌아오는 건 그의 짜증이었고

"한국인들이 다들 그렇게 잘났냐?? 길에 돌아다녀보면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인간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맨날 나한테 술 마시는 걸로 뭐라고 하는 거야? 라며

그냥 한국에 사는 한국말 할 줄 아는 영원한 이방인이고 싶어 했다.


특이한 것은

중국인들 대부분이 그다지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티브이 뉴스 또는 인터넷에 여러 번 한국땅에서 벌어지는 중국인들의 범죄나  비매너 행동에 대해서 다루곤 했지만,

그건 그 사람 개인의 행동 문제인거지, 남의 땅에서 벌어진 큰 실례임을,

민족주의적 특성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편하게 사는 마인드들을 갖춘 듯했다.


그가 어렸을 때 중국에서 그의 가정이 해체되고, 그 이후로는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친구들에게는 정의로울 만큼 돕고 베풀면서 살았다며 의리라곤 개뿔도 없는 한국인들보다 조선족들이 훨씬 낫다고..

그런 말을 자주 나에게 했다.


1. 나는 그와 결혼한 이후로는

그를 완성형 남편감으로 만들기 위해서

단 한 번의 밥상도 반찬그릇 통째로 내어준 적이 없었고, 항상 고기와 국을 갖춘 한국인의 모범적 밥상을 준비했었다.

그리고...

두 부부가 식사를 하고 나면

다정하게 맥주 한 캔 하며 티브이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나는 식사를 천천히 하는 편인데, 그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만졌다.

어느 개그맨과 탤런트부부가 그래서 이혼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그게 왜? 그랬는데

그게 진짜 이유가 되더라.

식사시간 20분을 못 기다려주는데 앞으로 내 평생 미래는

어떻게, 뭘 기다려 줄 수 있을까 싶었다.


2. 그가 한국 남자들처럼 옷을 잘 입길 바랬다.

그래서 난 그와 자주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옷을 사러 가곤 했는데, 본인 옷을 한참을 다리 아프게 돌아다니며 입어보고 고르고 나선

집에 그냥 왔다.

다리 아픈 나에게 그 흔한 커피 한잔을 사 주는 걸 모르고, 립스틱 하나 쥐어준 적이 없었다.


그는 그에 대해 이렇게 항변했다.

"커피 집에서 마시고 나왔잖아? 그리고 너, 니 혼자 인터넷으로 뭐 잘 사잖아?라고


3. 그는 유튜브를 혼자 밤새도록 끼득끼득 거리며 보는데, 한국 정치 비평 채널이다.

그리곤 한국 정부를 욕하고 정치인들을 우습게 본다.


내가 그랬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원래 비평이 오가고, 서로 저울처럼 시소질을 하면서 성장하는 것인데, 너는 왜 그걸 우스운 정치코미디로 보니??라고.

한국의 성장 발전과정은 깡그리 무시한 외국인 놈 같으니...

난 한번 더 그에게 도발해 보았다.

'중국 정치체계에 대해서도 이렇게 비평적으로, 너만의 개인적 사상을 갖고 말해보렴!

그는

"나도 알아 중국 정부 나쁜 거.

라고 답했다.

그게 끝이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지 않았던 그는 정치에 대한 건전한 토론 하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 그저 한국이 가진 언론의 자유가 재밌을 뿐이다.

한국은 안 잡아가고 중국은 잡아가기 때문이다.


4. 나는 화목하고 싶었다. 알콩달콩

늘 우리 부모님이 그랬고 또 그 안의 행복에서 나를 키우셨다.

그래서 나의 결혼생활이 비록 풍족하진 않아도, 부부가 늘 언제나 함께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이불을 쓰며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로 하고 싶었으나,

한편 그는 화목한 가정이 무엇인지 알긴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을 모른다.


그의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그가 중학생이던 시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이혼하셨더란다.

동네 지나가던 길에 이웃주민들이 그의 엄마에게 **이 아빠랑 '이혼' 너무너무 잘했다고  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엄마는 어린 두 아들들을 친척집에 맡기고, 중국 선양에서 한국으로 다시 일본으로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만나지 못하는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떠났다. 

아이러니하다.

지금까지 그에게 엄마란

그저 돈이 필요할 때 부쳐주는 사람

돈을 받기까지 얼굴도 가물가물한 엄마의 잔소리를 끝도 없이 들어야 하는

그런 존재일 뿐이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다.

서울 대림동에서 70세가 다 되도록 아직 월세에 사시며, 돈이 생기면 쓰고 돈이 없으면 일하러 나가신다.

성격은 평소에는 말이 없고 과묵하고 주변인들에게는 정의롭고 탈이 없다.

그런 그의 아들도 알코올중독자에 같은 아빠와 똑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생긴 것도 같다.

그래서 아빠의 아들도 이혼했고, 아들 전처의 주변인들은 '이혼 너무 잘했다'라고,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고 했다.


5. 그는 나를 여자가 아닌 엄마나 보호자로 착각한듯하다.

그는 도무지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없고

모르는데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는 언제나 1인 역이었다.

둘이 함께 PT를 끊은 적 있는데,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남편분은 피지컬은 엄청 좋으신데, 고집이 너무 세서 제가 알려드린 방법대로 자세를 전혀 하지를 않으세요.

'오히려 우리 고객님께서 젤 정석으로 잘 배우시고 계신다'라고.

모든 관공서 업무는 마찬가지고

그가 어딘가에서 한국인들에게 차별적 대우를 받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부분 대해 따지러 쫓아간 건 나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기 센 여자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실컷 그에 대해서 나쁜 식으로 적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그를 기억하면 가슴 한 구석이 아프고 짠하다.

그와의 결혼생활이 이렇게 끝나게 된 이유들을 이렇게 다 열거하고 나니

더 마음이 아프다. 그렇기에 더욱 애잔한 사람이다.

눈물이 난다.

난 지금까지 이혼하고  또 그가 집을 나간 후, 한 번도 실컷 운 적이 없다.

참았다.

신나고 홀가분한 척하며

그래야 내가 한 선택에 대해 부끄럽지 않으니

그래야 나의 선택이 옳은 것이 될 테니깐


언젠가는 눈물샘이 멎지 않을 만큼

눈물이 왈칵 쏟아져버릴까 봐...

아직까 울지 않았다.

이전 02화 웃고 떠들며 이혼하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