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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멜리싸 Jun 17. 2024

저는 중성화 수술을 했습니다.

영원한 불임이 되어버렸다.

 

"고모!!

우리 집은

루루랑 나나(고양이 2마리) 그리고 츄츄(몰티즈 1마리)까지 이젠 다 중성화했어.


"그래?? 고모도 중성화했는데


이 말 한마디에 가족들이 빵 터져라 웃었다.


중성화..라는 말이 꼭 동물에게만 쓰여야 하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오직 나에게만 '중성화 완료'라는 표현을 쓰니, 비하발언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재작년 자궁적출수술을 받고

현재는 자궁이 없다.

그와 살고 있을 때였고,

사이도 늘 좋았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헤어지자는 말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던 때였다.


30대 중후반부터 살이 급격히 찌고 그로 인해서 허리 통증이 시작되었는데, 진짜 허리뼈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매일 아침 기상 때마다 느꼈지만 이내 곧 조금 움직이면 괜찮아져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나 스스로에게 징벌을 내리게 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자궁적출..이라는 큰 벌칙



인터넷카페에 후기가 많은

**여성병원이라는 곳을 가보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최신식 아이패드를 들고 아주 정교하고 세심하게 내 자궁 안에 들어있는 근종(혹)들이 몇 개 그리고 어느 위치에 몇 센티짜리가 있는지 알려주셨다.


남의 병명을 그리고 여성으로서 처음 떨리는 마음을 안고 찾아간 그곳에서

그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내 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나는 순간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 서였다.

어떻게 여자가 자기 몸 하나 간수를 못하고

자기 관리도 못하는 여자처럼 취급받게 되었을까...

이건 내 자격지심인 거다.

의사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결론은 자궁을 없어야 된다는 말뿐


며칠 후,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뭔가 검사를 더 한다.

난 알고 있다.

결과의 차이는 없을 거라는 걸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동안 어떻게 견디셨어요??

이 정도면 일상생활이 엄청 불편하셨을 텐데요..


결국,

같은 결과 다른 믿음이 생겨버린다.



두 군데의 병원투어를 마치고

남편이었던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법적 보호자와 꼭 함께 수술하러 와야 된다고 했다.


엄마아빠와 오면 안 되냐는 내 물음에

간호사선생님이 당황하시면서 물으신다.

"기혼이시잖아요?? 그럼 법적보호자가 남편이에요.


'나를 보호하지도 않는데, 무슨 남편...


그는

노발대발했다

갑자기 날뛰면서

나를 행복한 신혼부부의 가임 여성으로 변신시키더니,

"그래도 앞으로 애 없이 산다는 게 말이 돼??

라더니

추가로 '애도 못 갖는...이라는 표현을 썼다.


결혼생활

6년 동안, 우리는 내내 싸우기 바빴고 서로 정 떼기 바빴지

한 번도 자녀 계획을 세운적이 없다.

게다가

그는 알코올중독이다.

매일매일 술 마시는 것도 싫고 과음 한 날에는 호텔식 침구였던 일명 바스락 이불에 더운 몸을 얼마나 비벼대서 소리가  나는지

나는 처음에는 그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각방을 쓰자고 했는데,

그는 술이 좋고 술을 끊지를 못해 그냥 독방생활을 선택했다.

근데 이제 와서 갑자기 웬 아이타령??



보통의 경우 또는 아내를 정말 사랑한다면

"검사 결과 때문에  마음이 많이 힘들지? 그동안 몸이 많이 힘들었겠구나..

라고 할 수 있는 남성분들은 많지 않겠지만,

그동안 몸이 아파왔고, 앞으로 더 아플 수도 있기에 수술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검사 결과를 말하는 아내에게

'아이를 못 갖는 몸'으로 취급해 버리는 남편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결과는 뻔하게 될 것이다.

아내에게  마음의 비수를 꽂고서 존중을 받으며 살긴 힘들 것이다.


40년 평생을 자궁을 몸에 지니고 살아왔고 또 앞으로는 평생 자궁 없이 살게 될 여성에게

'아이 못 갖는...이라는 표현을 쓰다니


그는 그 코멘트 외에는 다른 말이 없었고,

거기에 더 실망한 나는

또 한 번 나의 이혼 기록장에 그에 대한

X표시를 더 만들어 버렸다.



자궁근종이 생긴 이유는

간단했다.

과음, 기름진 음식, 운동부족, 라면, 밀가루 같은 정크푸드 과섭취 그리고 아이스커피


후진국은 국가가 국민의 식생활을 관여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처럼 의료보험 제도가 잘 되어 있는 경우에는 모든 먹는 제품에 재료성분과 영양소 함량들이 다 표기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전반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서 장수를 하며, 다른 의료 후진국 국가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살면

원국가의 사람보다 최소 10년 이상 장수를 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내 병의 원인이 그와 아주 관련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늘 저녁은 술 그리고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닌 술안주류, 요리를 하더라도 술안주처럼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이었다.

쉬는 날 제발 5분 거리의 중앙공원에 가서 산책 좀 하자고 해도 귀찮다고 하던 그였다.


글을 쓰고 보니 참 핑계가 좋다.

그러나 속된 말로 빈궁마마가 된것에 후회는 없다.


그와 함께 붙어 있어야 했다.

내가 잠깐이라도 눈앞에 사라지기만 해도,

그는 그 사이,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바로 술 약속을 만들어 버렸다.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묵직하던 몸이 용수철처럼 탁 튕겨져서 발딱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보호자 동반 없이 혼자 병원 입원수속과 수술 동의서를 썼다.

요즘은 통합간호시스템 덕분에 사실 보호자의 케어는 필요하지 않다.

그냥 내 곁에 대화할 사람이 없을 뿐 그리고 아프다고 찡찡거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뿐

난 그와 함께 산 이후로는 원래도 뭐든지 혼자서 했고, 혼자서 해결했기 때문에 별로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수술 당일날, 수술실 앞에서 잠깐 보호자로 반 강제로 와 있는 그와 조우한 후에

눈을 깼고 수술 후 극심한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병실로 옮겨질 때 잠깐 그의 실루엣을 본듯하다.


당일 저녁

무통주사 덕분에 살았다.

소변줄을 제거하고,  후부터는 유착을 방지하기 위해 열심히 걸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난 입원 내내 병실 복도를 이 악물고 걷고 또 걸었다.

거의 하루종일

 .

.

.

그렇게 퇴원 후 집에 왔는데

집에 냥이들 털이 많은가 보다,, 자꾸 재채기가 나온다.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들어온다.

시끄러운 청소기 소리에 보안키 누르는 소리도 못 들었다.

그렇다고

누워서 계속 환자놀이를 하고 있을 수 없지 않냐..


그런 나를 보더니

그는 말한다.

"어?? 멀쩡하네??

라고


수술 후, 무려 10킬로 이상이 빠졌고

몸이 날아갈 듯이 가볍다.

피곤한 적이 없다.

나의 몸이 이렇게 좋아지는 걸 안타까워하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는 내 자궁의 역할을 '아이 잉태' 로만 봤지,

내 건강과 생활리듬을 아주 엉망으로 망치고 있는 상태로 변한 것에는 공감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이제 더 이상 완전한 여자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이혼할 때

내가 훗날 다른 남자를 다시 만나 재혼하게 되는 상황은 그는 자신의 시나리오 안에 넣지 않더라.

오히려 그는 훗날 완전히 내 명의로 된 아파트의 가격이 오르거나 재건축을 해서 명품 아파트가 되는걸 더 걱정하고 배 아파했다.


귀여운 내 자식들


중성화 한 엄마, 그리고

중성화한 2마리 냥이 녀석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중성화 안된 사람은 우리 집 사람이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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