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멜리싸 Jul 11. 2024

중국인 남편의 가출 그리고 실종신고

이혼 후

나는 예전에 비해 훨씬 예민하고, 상처에 취약한 사람이 되었다.

기분 좋게 오래간만에 지인을 만났지만, 조금이라도 나에게 거슬렸던 대화 내용들이 있으면 며칠밤 내내 그 말로 인해

가슴 한편의 상처를 새기며

시름시름 앓기도 하고, 새벽에 눈을 떠서 답답한 심장을 쥐어 잡곤 한다.

그럴싸한 충고나 아니면 앞으로는 그런 표현은 삼가달라는 부탁을 톡으로 해볼까?

또는 당당하게 전화를 걸어 말해볼까?

아니다..

그 사람은 그저 스쳐 지나가며 했던 말이거나, 나에게 상처가 될 줄은 절대 몰랐을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일부러 비수를 꽂는 표현을 하는 자존감 강한 사람들도 있긴 하더라..)

하지만 

분명 기억도 못할 것이고, 그런 얘기를 며칠이 지나서 뜬금없이 한다면

이상한 사람은 오히려 그쪽이 아닌 내가 될 것이 뻔하기에

스스로 나에게 내릴 수 있는 치료는

그 사람을 연락처에서 차단을 하는 것이다.

남편만 없애버린 게 아니다.

주변에 얼마 있지 않은 사람들도 데스노트처럼 한 명씩 한 명씩 삭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당당하고, 어렸을 때부터 여러 나라에서 배우고 경험해서 그런지 보기와는 다르게

박식하다는-신나게 노는 언니처럼 생겼으나 그렇지 않았다는-그것이

전 남편이었던 그가 나에게 빠지게 된 특별한 매력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본인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배우자감은 좀 더 자신보다 나은 조건이었으면 했었다고 했다.


반대로 나는

여러 남자 만나봤지만,

30대 한창때 만났던 그분들은 너무 본인들이 잘났고, 나를 존중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결혼대상으로 진지한 만남을 원하지 않은 것 같아

나쁜 남자들만 있는 줄 알았던 그 시절


'아니야, 인연이 되려면 세상에는 좋은 남자들도 정말 많단다'라고 누가 속삭이듯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우연으로

그가 나에게 와 인연이 되어 주었다.



결혼 생활 시작부터 싸우기 시작했다.

술 중독 수준인 그는

술을 안 마시는 날이 없었고,

심한 날은 모든 신체 오장육부와 자신의 뇌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회로까지 알코올로 가득 채우고 나서야

그날의 술자리는 끝날 수 있었던 날이

내 결혼생활의 기억의 대부분이다.


나 : " 술 그만 마셔, 그리고 내일 눈 떠서 맑은 정신으로 얘기해

남편"**아, 나 술 젼혀 안. 취해 거 등. 아. 아. 아 그겡 아. 니. 고

나 : "그만 마셔, 그만 마시라고 했다.

남편 : 이**!! 네가 뭥. 데? 이 ㅆㅂ*이

나 : "뭐? 너 지금 욕했어? 이 미친**가!!!


본인의 주량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술은 마신 그와의 저녁식사 겸 술자리는 늘 이런 식으로 끝났다.

술 마신 사람과의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젊고 패기 있던 나는

호기롭게 술에 만취한 미친놈과

끝도 없을 말 상대해 주면서 싸웠고, 격해졌고 그러다 보면 속에서 울화통과 천불은 오히려 내가 났다.

그렇게 지퍼진 천불로 인해 집안의 물건 정도는 몇 개를 부수고 나야 모든 게 종료되었다.




그리고 어느날의

다음날이었다.

느지막이 눈을 떠 온 집안 전체에 아직 채 해독되지 못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화장실을 가는 그에게

내가 말을 걸었다.


"술 깼니?

"어 嗯(중국 발음과 성조를 넣어 약간 놀리듯이 대답한다)

"여기 와서 대화 좀 할까?

"뭔 대화!!?

그는 문장을 3음절 이상 말할 줄 모른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눈 뜨면. 이성적으로. 대화.

라는 것을 실패했다는 예감이 든다.

좀 참아야 했었지만,

그가 나에게 반했던 내 매력이 당당함이었다고 말했던 대로, 나는 급기야 잠에서 깼지만 술에서 깨지 못해 누워있는 그에게 가 폭격을 퍼붓는다.

그러더니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 남자


"어디 가려고 그래!!!

"나갔다 올게

"아니야, 너 오늘 어디든 못 가! 어제 그렇게 나한테 욕하고 난리 쳐놓고 사과도 없이 뭐 하는 짓이야!!


둘이서 또 한바탕 몸싸움이 일어나고

미끄러운 싸구려 강화마루 바닥에

결국 함께 미끄러지는 인간의 몸 또한, 여자 쪽인 나 일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말과 기세로 남자를 이길 수 있을지 모르나, 힘으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밀침에 그렇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나는 도망가는 그를 젖 먹던 힘 보다 더 초월한 힘으로 맨발로 달려 나가 보지만

결국 잡지 못한다.

마주친 이웃들의 이상한 표정과 눈빛이 창피한 줄도 모를 만큼 분한 마음을 부여잡고

집으로 들어와 그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수도 없이 걸어본다.



3일이 지났지만

그의 전화기는 꺼지지도 않은 채, 나를 스팸으로 걸어놔 전화연결 자체가 거부된다.

그가 가출한 후 3일이 지난 후부터는

집착적으로 전화를 걸어대는

내가 죄인이고, 내가 집으로 오라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상황이 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한없이 뭉개진 자존심에 나보다 못 배우고 나보다 누릴걸 누려보지 못한 그에게 사과라도 받아야지 , 도도하고 당당하며 좀 배운 여자로서

화가 누구러질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연락이 안 된다.

사과를 내가 구걸하는 중이다.


가출 5일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실종신고라도 가능한가 싶어 경찰서로 찾아갔다.

그의 신원조회를 위해 외국인등록번호를 부르는 순간, 형사의 얼굴엔 옅은 미소를 띤다.

난 순간적으로 변하는 형사의 표정을 단번에 캐치할 수 있었다.

남편을 찾고 싶었고 그만큼 간절했기에 왠지 요즘의 첨단 시스템으로는 그를 금방 찾아줄 수 있을 거라는 간절한 믿음으로 형사의 얼굴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분 출국하셨네요?

"네?? 어디로요???

"중국으로 가셨네요

"그럼 중국으로 출국한 건 실종신고가 안 되나요?

타의로 갈 수도...

"남편분 국적 중국분 아니세요? 그럼 본국으로 간 건데 무슨 실종신고를 해요. 본인 집에 간 거라 그러면 뭐라 그럴 거예요


'하...'

그는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직접 공항에 가서  비행기표를 발권하여 출국할 줄 아는 사람



그는 그렇게 본인의 분이 풀릴 때까지

중국 어느 유명 관광 도시에서 실컷 쉬다가 돌아왔다.

돈주고 구매한,

협곡위에서 비겁한 본인과 달리 아주 용맹스러워 보이는 매를 어깨에 걸치고 촬영한 여러장의 기념 사진과 함께..


그가 귀향을 했다가 외국으로 돌아온 건지

외국여행을 잠깐하고 본국으로 돌아온 건지 헷갈리지만 유효한 결혼비자를 이용해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와의 결혼생활 7년 내내

나는 좀 더 발전과 성숙이 되고 모든 것이 안정이 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 역시 함께였으면 했다.

그것이 젊은 남녀가 연애가 아닌 결혼하는 이유가 아니면 뭐겠느냐

하지만

사춘기 아들이 있었다면 그 부모들의 속 타는 마음이 그랬을까...

그는 도무지 불통이었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어른스럽지 못했던 나 역시 그런 그에게 격하게 표현할 줄 밖에 몰랐고 어느덧 화를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그 화살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나 스스로에게 꽂아 버렸다.

어느 순간 모든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해결'이라는 현명한 방법보다는 '정리'라는 빠른 선택을 하며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중국으로 가출하고 돌아온 그를 받아주지 않고 단호히 내쳤더라면

난 어쩜 여전히 높은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약이 되진 못한다.

마음의 응어리는 오히려 쌓이고 쌓여 독이 되고 있으니깐..

브런치의 내 연재에 악몽챕터들을 다 써 내려갔을 때쯤, 비로소 해독해 낸 모든 추잡스러운 기억들을 떨쳐 낼 수 있을까?

굳건히 씩씩하게 잘 지낸다고 자신하던 나

그가 바꿔 놓아 버린 나의 자존감과 성격으로 인한

내 인생 전체의 파급력은 상당하다.

남편만 없는 싱글이 아닌, 주변사람까지 놓아버린 진정한 외톨이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나쁜 자식













이전 05화 이혼하고 더 잘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