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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멜리싸 Jul 28. 2024

이혼 후 받게 된 반려동물 양육권

3년 전 전 세계에 팬데믹이 왔는데,

나에겐 큰 우울증이라는 또 다른 병명이 찾아왔다.

사실 팬데믹이라서 우울증이 왔다기보다,

펜데믹으로 인해 우리 부부가 24시간 붙어있는 날이 늘어났고,

행복을 만끽해야 될 나름의 신혼 시기는

짧았던 연애 기간 동안 서로에 대해 몰랐던 부분에 대해 낱낱이 파악하게 되어,

그는 나와 1부터 100까지 하나도 맞는 게 없다는 걸 오히려 확인할 수 있던 뜻밖의 계기가 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부탁하면

그는

중2병에 걸린 남학생처럼 더 반감을 갖고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냐?라는 언제나 똑같은 대답으로 맞받아쳤다.

그의 주변인들은 내가 엄청난 요구를 해서 남자의 숨통을 조이는 악처인 줄 안다.

나의 요구는 주로 생활습관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일찍 일어나라

술 마시지 마라, 쿵쿵 거리며 걷지 마라 등..


'하지 말라'

화법 이외에도


밥 먹을 땐 같이 먹자, 운동하자, 청소하자 등등

'함께하자'

화법에도 그는 언제나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자신의 생활패턴을 바꾸는-일들에 대한 나의 요구 또는 부탁을 싫어했다.


그러고

난 어느 날 갑자기 술을 마신 그와 옥신각신 통하지도 않는 언쟁을 벌이던 중


숨이 막혔다.

그냥 숨이 막혀요.. 가 아닌

그냥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고 이 현실의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이질적 세상에 내가 있는 듯,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 찾아왔다.


그러면서 나의 정신과 상담과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는데,

우울증에 걸리면 집 밖을 못 나갈 만큼 바깥세상이 무서워짐을 겪게 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가 너무 기르고 싶어 졌고, 펜데믹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굉장히, 무척이나 충동적으로

마스크, 모자 등으로 꽁꽁 나를 감추고

집 근처 어느 펫샵에 가서, 그중에서 가장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귀여운 녀석을 카드 할부를 통해 데리고 왔다.


동물애호가가 된 지금의 나로선

반려동물을 펫샵에서 분양을 하고 분양받는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렇게 우울증에 걸리면 모든 행동에서 충동성이 강해지고 소비에서도 그렇다고 하듯, 충동으로 인한 소비까지 함께 질러버리며 그렇게 나의 첫 냥아들(고양이+아들)을 키우게 되었다.


고양이가 싫다고 하던 그 역시

냥아들의 귀여운 매력에 빠져버렸는지

우리는 그 귀여운 생명체를 보며 웃었고, 어떻게 건강히 잘 키울까 사료와 간식용품도 함께 고르며

오래간만에 우리 집에는 활력이 생겼다.


그리고 1년 후

이번에는 내가 아닌 그가 어느 날 갑자기

" **이가 너무 혼자서 외로운 것 같아, 우리가 바빠서 잘 놀아주지도 못하고....

라며

너무나 귀여운 아기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그 아가 고양이도 우리 집에서 무럭무럭 씩씩하게 잘 커가던 무렵...

그리고 둘 다 성묘가 되어

우리의 가족으로써 익숙함을 찾게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또 싸움이 시작되었고

이제는 단순한 말다툼이 아닌, 서로가 바뀌지 않음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내가 옳다가' 생각의 우위를 더 차지하던 우리는

과격한 몸싸움까지 하게 되었고

어느 날 그의 밀침에 뒤로 자빠지던 순간,

내 눈에

땅에서 지진이라도 난 듯, 침대 밑 구석으로 긴급하게 숨을 곳을 찾아 도망가는 2마리의 고양이 녀석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미쳤다. 우리는 동물학대를 한다.

이건 동물 학대가 맞다.


그런데

정말 정말

나의 혀를 내두르는 상황은


둘의 사이가 조용해졌을 때

이에 대해서 그에게 말했는데

나는

역시나.. 는 정말로 변할 수가 없는 역시나.. 의

사실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고,

2마리의 냥이들을 위해서라도 평소에 언성을 낮추자는 나의 제안에 또다시

"네가 먼저 그랬잖아!!

라는 나를 탓하는 방어적인 문장을 수식어구로 붙여 말을 시작했다.


그와의 이혼으로

나 그리고 그 우리 둘만 행복해진 게 아니다.

지금 나와 살고 있는 내 사람자식 같은 2마리의 냥아들 녀석들도 행복을 찾았다.

그렇게 믿고 싶고, 그 녀석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 적어도 그런 것 같다.


나는

지금 써 내려가는 나의 결혼생활과 이혼의 경험담을 통해 이혼을 고민하는 모든 부부에게 이혼을 하라고 선동하는 게 절대 아니다.

어떤 날은

참을 수 있는 것 같고,

앞서 언급한 적이 있듯, 상대방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의 상상이

여전히 가슴 쓰라린 느낌으로 다가온다면 그건 아직 사랑일 수 있으니, 이혼의 시그널은 아직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끝도 없이 싸우고 증오하는 남녀사이에

애궃게 상처받는 사람 또는 나처럼 자식못지않게 나만 바라봐주는 반려동물들이 있다면

그건 아주 큰 죄를 짓는 일인 것임은 분명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남녀는 한바탕 싸우고 나서 쿨하게 화해하고 웃고 밥 먹는 게 가능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본 자식들이나 동물들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갈 것임이 분명할 테니 말이다.



늘 불행을 줬지만

또 다른 행복을 남기고 간 그 남자로부터

내 냥아들들에 대한 만남의 교섭권이나 양육 비은 당연히 없다.

너무나 다행으로 내 자식들은 사람이 아니라

그에 대한 법적 조항이 아직은 없다고 한다.

냥이 2마리를

모두 아무 말 없이 나에게 주고 훌쩍 떠나간,

그가

너무 고맙다.



지금은 저와 저의 가족들이 아주 사랑으로 극진히 모시고 삽니다. 동물에 대한 민감한 댓글과 저에게 상처되는 꾸짖음은 삼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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