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고 더 잘 살고 있습니다
외로움이 뭐예요?
우리는 이혼 후에도, 가끔 근처에 들렀다며 연락을 했고 만나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셨고,
올 3월 말에는 그의 생일 겸 만나
백화점에 가서 옷을 골라주고 스테이크까지 먹고 헤어졌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너희 무슨 미국 할리우드 커플이니??라고 했다.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혹시 누가 "너희 혹시 다시??...라고 묻는 질문엔
할리우드 마인드는 커녕 불같은 성격으로 돌변해서 절대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말라고 정색하는 나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부부로 살 땐 그렇게 요란하게 싸우고 몇 안 되는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세상 다 산 표정을 하고
삶이 우울하다니, 행복하지 않다는 둥
내 이야기를 걱정과 함께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마저 그런 암울한 세계를 상상으로나마 입문시켜주었으니,
내가 얼마나 여럿명에게 유쾌하지 못한 만남을 만들었을까 싶다.
그래놓고선 이제 와서는 아무렇지 않게 만나서 밥 먹고 같이 쇼핑을 하며 지낸다니
나와 그의 이혼은
경찰이 왔다갈 만큼 요란스러운 부부싸움까지 해놓고선
곧 일주일 내로 아직은 헤어질 수 없다며,
싸움 유발자는 그래도 '미안하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그리고
싸움의 피해자는
"아니야 이번은 진짜 너와 헤어져야 할 것 같아, 난 도저히 너랑은 못살아"
하지만 속으로는 '이번엔 확실히 버릇을 고쳐놔야겠어!!
라는 용서와 함께 기대감을 가지고 있을...
.
.
그럴 때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가 꼴도 보기 싫음, (사랑하지만)이라는 생략을 더 이상 붙일 필요도 없고,
'이번 한 번만'이라는 옐로카드를
한 번이 아닌 수십 번 사용해 버린 후였고
싸울 때마다 서로에게 상처주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표현 중
가장 센 문장인 '난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던 것이,
이제는 진짜로 상대방중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죽었다고 해도 안타까움을 동반한 인간으로서의 동정으로 슬프긴 하지만,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했을 때에 대한
찢어지는 슬픔의 고통이 아닐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 헤어졌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냥 함께 살았을 때의 습관처럼
가끔의 식사와 커피 한잔도 그랬다.
격렬한 싸움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대화하고 밥 먹던 그때처럼
갑자기 끊어내지 못했던 내 생활의 일부분처럼
요즘은
주변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얼굴이 좋아졌어요, 얼굴이 훨~씬 밝아졌어요. 기분 좋아 보여요. 예전과 진짜 달라요... 등
이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이래서 사람은 표정과 말투 행동에서 그 사람의 가정환경과 생활수준등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체감되는 것 같아 지난 내 과거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나는 이혼 후 이렇게 바뀌었다.
1. 집안을 밝게 깔끔하게 꾸미기
예전에도 그의 물건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와 함께 살 때는, 창문을 열어 맑은 공기로 환기를 시킨다거나
커튼을 활짝 열어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한 적이 없었다.
늘 집은 어두웠고, 나는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렵고 싫었던 것만큼
내 집 분위기도 우울하고 어두침침 했어야했지,
내 마음 상태와 반대로 쓸데없이 쾌활스럽게 밝음 상태가 싫었다.
이불, 침구류를 모두 밝은 파스텔 톤으로 바꾸었고, 쓸데없는 잡동사니들,
언젠가는 입을 거야--목록에 들어있는 안 입는 옷들을 모두 다 싹 다 버렸다.
그런 것들을 버리는 과정이 너무 신나고 재밌었고,
예쁜 집안의 소품들을 새로 사서 나만의, 나 혼자 사는 집을 꾸미는 재미를 느꼈다.
2. 운동을 한다.
예전에는 내가 잠깐이라도 집을 비우면, 이때다 싶어 술 약속을 만들어버리는 그에게 노이로제 걸릴 정도였다.
남자가 술도 한잔 할 수 있지..라고 그의 엄마는 대변했지만,
그의 폭음에 대해
내가 기록해 둔 것만으로도 다 채워버려 진 핸드폰 용량
이혼을 소송으로 진행 안 한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야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을 지경이니, 술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로맨틱 드라마를 잘 쓰는 작가일지라도 아름답게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미련은 커녕
그 '술'이라는 게
그와의 헤어짐이 이렇게 홀가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중심 소재가 되어 주었으니,
그가 떠난 후
이제는 완전히 나도 그를 떠나,
집 밖을 나와 '빛'을 보고 다니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때론 무작정 걷고, 길을 다니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배달이 아닌 직접 동네 슈퍼에 가서 물건을 구경하고 고르고 대화하는..
그런 보통일이 보통 인간으로서 얼마나 당연한 일이었는지를 깨닫고 산다.
요즘은 건강한 몸매 만들기를 목표로 러닝도 시작했다.
땀을 흘리는 게 그저 신난다.
3. 책을 읽는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그 공간을 채우고 싶었는데
나에게 필요한 건 '독서'였다.
최근에 정유정의'종의 기원', '완전한 행복' ,
은희경의'새의 선물',
양귀자의'모순'
이렇게 읽었는데, 은희경, 양귀자 작가의 책은
처음 그분들의 책을 읽던 고등학생의 나, 그리고 지금 40대가 된 나,
이렇게 또 다른 삶의 관점과 또 다른 이해력으로 다시 읽어보니
과연 내가 읽어본 적 있는 게 맞나? 싶을 만큼 다른 스토리처럼 느껴지는 재미가 있었다.
독서를 하는 또다른 가장 큰 이유는
몇 년을 싸움을 하던 내 거친 입, 그에게 수많은 상처 주는 말들, 그리고 화가 절정에서 내 입을 통해 뱉어내던 욕설들 때문이다.
앞으로 누구를 만날 때,
행여나 나의 그런 상처(사실은 상처가 되었다기 보다는 습관이 되었을지 모르는)들이 상대방에게 무의식적으로 상처가 되거나 아님 혹여나 나도 모르게 내뱉은 거친 표현들로 인해 내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쇄신시키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다.
나는 독서를 통해서 젊 잔 게 말하는 법 그리고 누군가의 생각을 파악하는 방법을 깨닫고 있다.
그렇게
헤어질 듯 싸우고 서로를 싫어했던 우리는,
이혼후에도 완전한 헤어짐을 하지 못해
한동안은 그렇게 만남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의 안위조차도 모른다. 원래도 무관심했기에 이제는 온전히 더 무관심해졌다.
어쩌면
먼 훗날 나중에는
젊은날의 서로에 대한 기억조차도 어렴풋할
그때,
우연히 "아고.. 그렇게 되었구나...라고
안타까운 탄식과 함께 상대방의 소식을 듣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할리우드 커플도 아니고
원수진 남남도 아닌
마치 초기화된 컴퓨터처럼 서로에 대한 모든 정보가 없어진 상태로 지내고 있다.
남아있는 건 휴지통에 버려진 지저분한 기억들만...
이 부분도 30일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삭제될 것이라 믿는다.
이혼
또 다른 불행이 아니고
새로운 행복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난 또 업그레이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