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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비 Jun 18. 2020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1부 - 돈은 빚이다>

자본주의는 정의로운가?

 자본주의에서 돈은 곧 권력이다. 1인 1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와 달리, 자본주의는 1주 1표를 행사한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 구조인 셈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돈의 노예로 살아간다. 가난한 자는 조금의 목소리라도 내기 위해서, 부유한 자는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한 사투가 오늘도 벌어지고 있다.


1. 줄거리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5부는 순서대로 '돈은 빚이다', '소비는 감정이다', '금융지능은 있는가',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모두 유튜브에서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출처 : 통계청


 물가가 매년 오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수요·공급 이론에 따라 공급보다 수요가 더 높아졌거나, 시중 통화량이 많아 돈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전자보다 후자이다. 수요·공급 이론에 따른 물가 변동보다 시중 통화량 팽창에 따른 물가 변동이 훨씬 크다. 그와 더불어 수요·공급 이론과 관계없이 물가가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1970년대 136.4kg이던 연간 쌀 소비량이 2010년대 들어 61.0kg으로 감소했다. 수요가 4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줄었지만, 쌀 가격은 2배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즉 수요·공급 이론보다 중요한 물가 변동 요인은 시중 통화량에 따라 좌우되는 돈의 가치이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甲이 A은행으로부터 10,000원을 5% 이자로 빌린다고 가정하자. 甲은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10,500원을 갚을 수 없다. 시중 화폐량이 10,000원이기 때문이다. 결국 甲이 돈을 갚기 위해서는 A은행이 새로 돈을 찍어낼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甲과 乙이 각각 A은행으로부터 10,000원을 5% 이자로 빌린다고 가정하자. 甲과 乙은 10,500원을 갚을 방법이 있다. 甲은 乙로부터 500원을, 乙은 甲으로부터 500원을 가져오면 된다. 하지만 甲과 乙 모두가 갚을 방법은 없다. 결국 은행은 통화를 팽창해야 하고, 누군가는 은행에 돈을 갚지 못하고 파산할 수밖에 없다.



2. 생각


 자본주의는 경제적 불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 모두가 경제적으로 평등하다면, 돈은 더 이상 희소하지 않다. 돈이 희소성을 갖지 못한다면, 돈은 가치를 잃는다. 돈이 가치를 잃는 현상, 자본주의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불평등을 적당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으로 평등하다면 앞에 말했던 것과 같이 자본주의는 무너지고, 너무 불평등하다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유럽,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유령이 괜히 나타난 것이 아니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임금, 핍박 등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이 유령이 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경제학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가장 이상적인 노동 임금을 '죽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임금을 통해 경제 체제를 유지한 채 이득을 보자는 것이다.


 현재 자본주의는 경제적 불평등을 적당히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통계청에 따르면, 10 분위가 순자산의 43.3%, 9 분위가 18.2%이다. 상위 20%가 순자산의 60%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자본소득은 더욱 심각하다. 2017년 국세청에 따르면, 소득 상위 1%가 이자소득의 46%, 배당소득의 69%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런 모든 지표는 경제적 불평등을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상 중 경제학자 한 분이 '자본주의는 가장 성공적인 경제 시스템'이라고 한다. 아직 자본주의가 태어난 지 1~200년 밖에 지나지 않아 성공 여부를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대체할 다른 경제 시스템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안이 없는 한 자본주의를 지켜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경제적 불평등을 적당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 자유의 가치보다 평등의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교황(The Two Pope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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