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비 Jul 31. 2023

역사학연구소, 『역사속의 미래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사상은 없다


역사에서 빛나는 별만을 기록할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삶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p.62


사회주의 사상의 형성 및 발전과정은 자본주의의 형성과 더불어 성장했던 노동자 운동과 마르크스주의의 융합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서구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성립한 식민지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되었고 이것은 곧바로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동시에 추구하는 목적을 갖게 되었다. - pp.71~72


식민지 시대의 조선인 공산주의 운동은 비록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사회체제에 대한 비판과 투쟁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론적으로 조직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틀렸거나 부족했다고 해서 그들의 역사적 활동 자체가 사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들은 어떠한가! 과거 운동에 대한 비판과 부정 그리고 무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 자체에 안주하거나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부산물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지배계급의 논리에 편승하고 있다. 적어도 역사적 책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일순간의 좌절 때문에 자신의 신념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신념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먼 과거에서부터 추구되어 온 것이다. 바로 인간해방을 위한 평등의 가치였을 것이다. 평등의 가치는 시장의 논리로는 절대로 보장해 줄 수 없다. - pp.109~110


이러한 전평 노동자들의 투쟁목표는 자본‧임노동 관계를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즉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제 영역에서 자본과 자본주의 국가의 목적인 ‘잉여가치 창출과 그것의 이윤으로 실현’을 최소화하고 인간으로서의 노동자들의 목적인 ‘생존권’과 ‘생활권’ 요구를 최대한 획득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렇게 전평의 목표는 자본과 국가의 목표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따라서 전평은 행동강령, 즉 투쟁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 활동 과정에서 자본과 국가의 대응양상의 성격에 따라 다른 태도를 취했다. - p.163


‘극단의 시대’였던 1940년대 후반기, 즉 전평 노동자들이 활동했던 미군정기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이러한 ‘극단의 시대’ 자체의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최대한 ‘완화’ 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사회의 존재 목적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 즉 ‘생존권’과 ‘생활권’의 확보에 두었다. 그들은 이러한 사회의 수립을 당면한 투쟁목표로 삼고 이를 위하여 생산수단과 국가권력의 인민공동소유화를 지향하면서 사회적 실천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이러한 목적 설정과 이를 위한 실천 활동 자체만으로도 ‘이윤증식’을 사회의 존재 목적으로 삼고 활동하고 있는 ‘야만적’ 무리들에 비하면 그들이야말로 얼마나 ‘고상한’ 가치를 지닌 인간들인가!

전평 노동자들은 이러한 인간적인 ‘고상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계급 자신에 의해 쟁취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실천 활동을 전개했다. 따라서 그들이 무언가 이루어놓은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누가 아닌 그들 자신이 한 일이며 반대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누가 아닌 그들 자신이 한 일이다. 전평 노동자들이 인간적 ‘고상함’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사회와 역사의 ‘주체’이기를 그만 두었을 때, 즉 그들 스스로가 ‘타락’하고 자본의 ‘야만적’ 목적에 굴복했을 때 그들은 역사적 ‘패배’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 p.175


200만이 넘는 민중이 참가했던 3‧1 민족해방 운동은 끝내 실패했다. 3‧1운동에서 민중이 크게 저항했는데도 일제를 물리칠 수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패배주의에 빠진 사람도 있었다. 또 ‘문화정치’라는 거짓 개량에 휩쓸려 친일파가 되는 사람도 늘어났다. 일제가 휘두르는 ‘채찍’에 겁먹었던 그들은 일제가 내미는 ‘당근’에 더욱 솔깃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그토록 많은 민중이 일제에 격렬하게 맞서 싸웠다는 사실에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차금봉처럼 3‧1운동을 ‘투쟁의 기억’으로 간직한 채, 더욱 힘차게 민족해방 운동에 나섰던 운동가들은 새로운 운동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20년대에는 새로운 운동이념으로 사회주의가 폭넓게 번져갔으며 ‘조직의 시대’라고 일컬을 만큼 노동자, 농민단체가 많이 생겼다. - pp.260~261


일제 식민지시대든 분단시대든 간에 공산주의자의 본연의 임무는 노동자와 민중의 민족적‧계급적 해방투쟁이 올바르게 나아가도록 돕는데 있다. 이를 위해서 공산주의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당이 없으면 당을 건설해야 하고 당이 있으면 그것을 더욱 강화해야 하며 이와 동시에 올바른 혁명노선을 작성해야한다. 이러한 것이 공산주의자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데 결정적인 의의를 가진다. - p.320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에서 수많은 지도적 인물들이 뜨고 사라져갔다. 그들이 걸어왔던 삶의 일지를 정리해내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그들을 우리의 이상과 진로를 비추어주는 밝은 별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도적 인물처럼 밤하늘에 빛나는 하나의 밝은 별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자신의 과거를 심연 속에 깊게 담그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돌리는 게 더욱 필요하지는 않을까. 우리 모두가 하늘에 빛나는 별은 아니기에. - p.350

매거진의 이전글 최상천, 『알몸 대한민국 빈손 김대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