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푸르름이 사는 곳

일상, 그 이후의 일상

by 시월

고향으로 돌아온 지 어언 넉 달째. 아직도 자취방을 빼던 그날 밤의 공기가 생생하다. 그곳에서의 마지막 밤, 짐을 모두 빼고 방의 상태를 내가 오기 전으로 되돌렸다. 그래, 나의 방에서 더 이상 ‘나’가 남지 않도록 했다. 기묘한 것은, 자취방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 기분이 마치 여섯 해 전과 같았다는 것이었다. 2019년, 고향을 떠나 처음 낯선 땅에 발을 디딜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정든 곳을 떠나는 아쉬움, 내일이면 더 이상 나의 존재가 이 공간에 없으리라는 슬픔 등.


여전히 잊지 못한다. 그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들을, 그 별을 보며 꿈을 꾸었던 순간들을, 그 꿈을 함께 나누고 고민했던 그들을. 사랑하는 그들을 남겨두고 와서 그런가, 처음에는 지금보다 더욱 싱숭생숭했다. 그래도 감사하기로 했었다, 그 땅을 떠나는 아쉬움에 공허를 느끼기보다는, 부모님이 든든하고 버티고 계신 고향이 있음에.


몇 달이 지나 오랜만에 다시 그 땅을 찾았다. 물론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삶에서부터 비롯했다. 당차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멋스럽게 그 땅을 떠나왔건만, 스스로 보기에는 그들의 기대와 응원만큼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존감이 무너져 있었던 것 같다. 졸업 후 작가의 길로 완전히 들어섰다는 막막함, 공부도, 아르바이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죄책감, 언제까지나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다는 조급함 등. 이 글을 쓰는 지금에야 학원도 다니고 알바도 시작해서 자존감이 나아졌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다시 찾아가기로 한 것은, 이러한 자책보다 그들을 향한 그리움이 더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두려움과 별개로, 올라가기 전부터 기대에도 부풀어 있었다. 몇몇 후배들에게 보고 싶다는 둥, 왜 찾아오지 않느냐는 둥, 찾아오면 같이 놀아주겠다는 둥 말을 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사나흘 간의 일정을 계획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이었다.


예상처럼 순탄치 못했다. 나에게는 특별한 여정의 이 순간이, 그들에게는 여전히 일상이었고, 필연적인 바쁨을 동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고, 이것을 예상하지 못한 나 자신이 어리석었다. 어리석다는 너무 과장인가, 처음 겪는 상황이니 말이다. 조금 속상했다고 해두자.


예상보다 사람들을 적게 만났지만, 그래도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립던 형님들과 친구들, 걱정되던 동생들과 후배들 모두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 안심했다. 훌륭히 자라주었구나, 하는 괜한 뿌듯함이라고 할까. 삶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멋있었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날 밤, 그곳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여자 친구와 함께 걸으며 문뜩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군대와 코로나 등의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장거리 연애에 익숙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함께 이곳을 다니던 게 일상이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특별히 시간을 빼야만 만날 수가 있었다. 여자 친구뿐만이 아니다. 친구들, 형님들, 후배들 모두 애써 노력해야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일상은 일상이었던 그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푸르름이 사는 곳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나는 그 땅을 떠나왔으며 내 앞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감사했던 것은, 오랜만에 그들을 만나며 많은 용기와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을 통해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었다. 몇 년이 지나더라도 그 땅에는 나의 푸르렀던 시절이 남아있으면 좋겠다. 힘을 잃을 때마다, 삶에 지칠 때마다, 그 땅에서 일상이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의 일상에 또 한 걸음 내어 디딜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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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에세이의 제목은 애니메이션 '주술회전'의 오프닝 곡 중 '우리들의 푸르름이 사는 곳'에서 빌려왔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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