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장 오픈이 가능하다는 점 덕분에 바로 채용될 수 있었다.
그럼 영어를 잘하는 건가? 영어는 간신히 대화가 가능한 정도이고 2시간 이상 영어로 대화하면 슬슬 두통이 생긴다. 10년 전에 본 수능에선 외국어 3등급의 성적표를 받았다.
그럼에도 나를 채용한 매니저와 슈퍼바이저가 고마웠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내 유일한 자랑인 성실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본 코 워커들이 서서히 나를 받아주고 인정해주어 다시 나는 그들의 기대와 신뢰를 잃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는 선순환 속에서 일할 수 있었다.
요지 매니저는 일본인이다. 이제 더 이상 매장을 운영하지는 않지만 열명이 넘는 직원들을 한 팀으로 묶어주었다. 그래서인지 슈퍼바이저들 즉 요지와 같이 오래 일한 사람 세 명이 있는데 일본인이다. C와 K, Y이다. 다들 슈퍼바이저로 본인의 직분을 잘 해내고 다른 파트너들과도 서로 거리낌 없이 지냈다.
그리고 다른 슈퍼바이저 R과 E도 나이가 비슷해서 그런지 파트너들과도 잘 지내면서 일을 능숙히 해냈다.
나랑 나이가 비슷한 파트너는 R와 B가 오전 타임에 같이 일해서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이십 대 후반에 타국에 온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온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같이 있으면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S도 나랑 동갑이고 한국인이었지만 아쉽게도 시간대가 겹친 적이 열 번도 안되었을 것이다.
다른 오전 타임 친구로 D가 있다. D와는 거의 일주일에 다섯 번이나 같이 일하면서 마주치고 일하니 친구를 넘어서 가족같이 느껴졌다. 서로 티격태격하는 장난이 그때는 그저 그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는데 지금은 그립다.
처음 면접 본 날 만난 M은 내 인생에서 최초로 만난 귀인이다. 한국에서는 귀인이란 말을 배웠지만 무슨 뜻인지는 와 닿지 않았다. 물론 한국에서 나를 이끌어 준 선생님, 교수님,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나에게 있어서 귀한 사람들이지만 한국이란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진 관계이다 보니 그 연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서 M이 나를 도와주고 챙겨줄 때 더 크고 값지게 느껴졌을 것이다. M 없이는 내 워홀 이야기를 적기가 불가능하다.
솔직히 나를 제외한 코워커들의 관계성을 전혀 모른다. 내가 눈치도 없긴 했지만 남들의 관계성을 긴밀히 살펴서 이곳저곳 붙어서 간 보는 것은 내 성격이 아니라 그저 두루두루 잘 지냈다. 뭐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