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1년 5개월이 지나서야 쓰는 일기

by 초이

1년 만에 한글이 가득 매운 인천공항이 반가웠지만 그뿐이었다.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아마 아직 현실감각이 돌아오지 않아 얼떨떨해서 그런 것이라 이제야 짐작해본다.


하지만 귀국날 만큼은 생생히 기억난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365일을 꽉 채워 돌아가는 나는 귀국 2달 전에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대만 항공이었고 대만을 약 3시간 정도 경유하는 비행기였다.


저녁 비행기라 돌아가는 날은 하루 종일 짐을 정리했다. 애초에 버릴 옷들만 가져온 터라 짐을 싸는 것보다 버릴 짐들을 처리하는 게 더 문제였다.


집을 말끔히 정리하고 캐리어를 집 밖으로 내놓을 때 친구 J가 와주었다.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아쉽게도 친하게 지냈던 룸메 언니랑은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J는 수다쟁이이고 말하는데 버벅거리는 나를 이해해주는 착한 친구라 같이 가는 길이 즐거웠다. 사실 한국을 가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는 않았다. 그때의 나는 1년 이란 시간 속에서 밴쿠버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공항에 가기 전 잠깐 팀 홀튼을 들려 J가 음료와 도넛을 사주었다.


어느새 저 멀리 공항이 보이는데 이제 정말로 작별인가 싶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올 거란 확신이 있었기에 슬프진 않았다.


출국 수속을 하는데 정신이 빠져 J가 도와주었다. 내가 여행을 많이 다닌 게 진짜냐며 농담을 건넸다. 출국 게이트 앞에서 이제는 마지막으로 J와 인사하고 밴쿠버에 남은 모든 것들과 인사했다.


나중에 한국 와서 J가 보내준 사진을 봤는데 진짜 가관이었다. 비행기 탈 때 편하게 입고 싶다고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비행기는 추우니까 가죽 라이더를 걸치고 신발은 하늘색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비행기는 야속하게도 정시에 떠났다.


P20190819_182122227_38C291D0-EB72-4CEF-B0FB-9622A0FD21FA.JPG

아침에 대만에 도착하는 비행기라 비행기 안은 고요했다. 기생충을 보다가 나도 잠이 들었다. 창문 밖이 밝아지더니 대만에 도착했다. 환승은 처음이라 긴장했지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Transfer 글자만 따라가다 보면 환승 대기줄이 나왔다. 그저 대기줄을 따라 이동하니 환승도 별 거 아니었다. 이제 서울 가는 비행기까지 약 2시간에 시간이 남아 면세점을 둘러보았다.


P20190820_081054929_FDC15D9F-C435-4A56-BC3A-A97CA11E3B84.JPG


P20190820_103340515_BE146981-A786-406E-9D29-516B987B76E3.JPG

밴쿠버 출국부터 한국 입국까지 모든 대만인들이 나에게 대만어로 말을 건넸다. 비행기에 오를 때 좌석 안내를 대만어로 해주었다. 일단 "xie xie"라고 답했다. 기내식 선택할 때도 대만어로 설명해주어 옆 좌석 승객이 대신 영어로 말해주었다. 그리고 대만에 도착해 면세점에서 둘러보는데 대만어로 상품을 설명해 주었다. 더 길어지기 전에 "Sorry. so how much is it?".

P20190820_095909667_EA2F58B9-349D-4398-8243-FDA36752DAB5.JPG
P20190820_105945468_121A1817-5A3E-4CAB-9A9B-B20546D3AD46.JPG

서울 가는 비행기에 올라 별생각 없이 노래나 들으며 오목을 두다 보니 도착했다.

제목 없음.jpg


가족의 싸늘한 반응과 함께 공항버스를 타고 동네에 도착했다. 엄마는 멀리서부터 설마 저 사람이 내 딸이라고 설마 하며 나에게 다가왔다고 들었다. 한낮 온도 30도가 넘는 이 곳에서 원피스에 가죽 라이더에 하늘색 슬리퍼를 신고 있는 사람이 내 딸인지 싶었다고 말씀하셨다. 겨울나라에서 온 특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