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들 과의 기억들
앞서의 글이 등장인물 소개였다면 지금은 그들과 관련하여 기억나는 일화이다.
이 중 한 일화는 자기소개서에 적을 정도로 아주 특별하다.
1.
일한 지 한 이주 정도 되었나 연습 삼아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처음으로 주문받는 일을 맡았다.
깜깜한 새벽, 운동을 하다 매장을 방문한 할아버지 세 명이 있었다. 그들의 주문을 받았는데 한 명이 바닐라 라테를 주문했다. 그래서 세 명의 주문을 확인하기 위해 읊어주는데 이 할아버지 중 한 명이 바닐라 라테를 못 알아듣겠다며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실랑이를 벌이자 옆에 있던 S가 다가와 그 할아버지에게 주문 제대로 들어간 거 맞다고 그 할아버지를 바로 이동시켰다.
기분이 나빴다. 아메리카노나 체스넛 프랄린 라테 같은 발음이 어려운 음료도 아닌 겨우 바닐라 라테인데 영어 못한다고 무시하는 그 할아버지가 이해도 되지 않았다.
다음 쉬는 시간에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쉬는 시간이 겹친 S가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기분이 진짜 별로라고 아니 내 발음이 그렇게 이상해? 하면서 바닐라 라테 발음 연습을 같이 해줬다.
하지만 S는 내 발음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그 사람들이 잘못된 거라고 말했다. 영어를 그렇게 오랜 시간 써 왔으면서 자기 나라 말을 못 알아듣는 그 사람들이 무식한 거라고 말이다.
이후로는 내 발음이 그들과는 다르게 좀 부자연스러운 건 당연하다 생각하고 뻔뻔하게도 이걸 못 알아듣는 청자에게 잘못을 돌렸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어느 날 M이 언니는 다른 한국인과는 다르게 영어를 못한다는 거에 대해 주눅 들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더 잘하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2.
일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일 것이다. 어느 정도 일은 익숙해졌는데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E가 바닐라 시럽을 달라고 하는데 못 알아들어서 건네주지 못했다. 캐러멜 시럽을 잘 못 가져다주는 건 차라리 낫다. 그런데 아예 바닐라 시럽 자체를 못 알아듣는 내 영어실력이 얼마나 나를 깎아 먹는지 점점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괴로워졌다. 어떻게든 노력해보고자 영어 공부도 했지만 본디 언어 공부란 게 바로 티가 나는 게 아니라 계단식으로 그저 매일을 어제가 오늘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과거를 생각해 봤을 때 그때보다 지금이 낫더라 하는 게 언어 공부의 특성이다 보니 공부한다고 해서 바로 해결이 되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일이 끝난 이후에 요지 매니저에게 상담을 신청했다.
오늘 E가 바에서 음료 만드는 동안 바닐라 시럽을 달라고 했는데 못 알아 들어서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일하는데 나는 방해가 되는 것 같아 미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요지는 대답했다.
"물론 아시아인으로서 우리가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는 게 문화지만 절대로 미안한 마음을 갖지 말았으면 해. 왜냐면 우린 한 팀이고 우린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니까."
요지도 일본인으로 캐나다에 와서 나와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답변에 진실이 묻어 나와 나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
"대신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게 훨씬 더 좋을 거야."
"그게 캐나다 방법이야."
이후로 내가 잘못한 일에 있어서는 사과를 했지만 이렇게 내가 한계에 부딪히는 일에 대해서는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러니 일단 나의 자세부터 달라졌다. 내가 작아져서 자존감을 깎아먹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받아주는 팀원들과 함께 제대로 일을 시작해보고 싶어서 더 열심히 영어 공부던 일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장 급한 대로 유튜브에 starbucks how to order 등 을 검색하여 영상을 보니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이전에 나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어 지금도 일하면서 항상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실수가 잦은 나를 항상 봐주는 팀원들에게 고마워 오늘과 다른 내일을 보여줘야지 하며 마음을 먹으며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