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것
그나마 밴쿠버는 난이도가 낮을 것 같다.
친구들이 물어본다.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것은 어떻냐고. 좋아, 좋은데 잘 모르겠다. 개인별로 가지고 있는 장점과 살아온 이야기, 성격이 다 달라서 말이다. 나는 우연히 내 성향과 환경이 적당한 때와 어울려서 잘 지내고 온 것이다.
2013년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갔었다. 수업 중 워킹홀리데이를 주제로 찬반을 나누어 이야기했다. 나는 반대였다. 어학연수도 9개월간 휴학하고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간 것이라서 더 이상 돈 벌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단기간 일하는 것은 이제 그만 하고 어딘가에 정직원이 되어 안정되고 싶었다.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보던 사람들의 안타까운 표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들은 더 이상 워킹홀리데이 지원 자격이 되지 않아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내게 언젠가는 꼭 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렇게 5년 후 정말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내가 상상했던 29살 나의 모습은 흰 블라우스를 입고 검정 바지에 안경 끼고 책상에 기대에 서서 열심히 문서를 보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초록색 앞치마를 두르고 "Hi How are you today?"를 하루에 수억 번을 반복하는 29살이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영어를 사용하면 좋은 점은 나이에 따라서 언어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Hi there"로 시작해서 말문을 틔우기가 쉬웠다. 그러다가도 한국인 언니와 이야기하면 존댓말을 쓰고 그러다 보면 말하는 단어나 내용을 고르게 되어 물론 친해지긴 하지만 서도 낯가림을 풀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영어를 쓰는 나는 한국어를 쓰는 나와 달라지게 되는 것 같다.
영어를 쓰면 낯선 사람에게 다가갈 때도 더 편하게 다가가고 영어 대화를 연습하고 싶어서 항상 대화에 참여하려 하는 등의 행동을 한국에서는 전혀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내가 필요할 때만 다가가기 때문에 만들어진 인간관계는 금방 사라지기 일 수이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정말 오랜 시간을 이어와 정으로 이어져 있다. 나에 대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였다.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 덕분인지 같이 일하는 코 워커들과 잘 지낼 수 있었다.
남들에겐 동료와 잘 지내는 것이 누군가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아주 특별하다.
20살 첫 아르바이트 이후로 지금까지 일하면서 협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주로 혼자 일하거나 같이 일하게 되는 경우에는 실수에 대한 무서운 피드백이 있었기 때문에 이건 협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나 혼자 잘해야 된다라는 생각이 있었고 이 생각은 업무를 하는데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스트레스가 많아질수록 실수는 더 잦아지고 실수가 잦아질수록 나는 점점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 같이 일하는 사람도 괴롭고 나 자신도 괴로웠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으로 협동을 하면서 때로는 팀원들에게 의지도 하고 내가 한 실수를 그렇게 크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여유를 갖게 되어서인지 초보라 하는 실수는 시간이 지나 사라지기 마련이고 어느덧 나는 어엿한 팀원으로 내 몫을 해내게 되는 게 뿌듯했다. 이 경험을 솔직하게 자기소개서에 써 내렸고 지금 일하는 곳에서 최대한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하되 스트레스는 받지 않은 효율적인 나로 진화했다.
이제껏 개인적인 이유를 써 내렸다면 지금부터는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이유의 다른 나라에서의 노동이 왜 좋았던 것인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최저임금이 높다.
현재 BC 주는 2020년 기준 최저임금이 14.6달러이다. 우리 돈으론 11,680원이다. 추가 소득인 팁을 거의 월급으로 받는 서비스직을 제외하고 스타벅스 같이 최저임금만 받는다 가정하에 5시간만 일해도 하루에 58,400원을 번다. 그럼 일주일에는 292,000원이고 한 달은 약 120만 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계산 법은 하루 5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침 7시부터 오후 12시까지만 일을 해도 한 달에 12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은 시간을 나처럼 공원에서 햇살 받으며 점심 도시락을 까먹을 수 도 있는 것이고 내 친구처럼 세컨드 잡으로 일하는 건 오직 선택에 달려있다.
한낮에 바다를 보며 도시락을 먹는 것. 밴쿠버 사람은 이것이 일상인데 한국 사람인 나는 꿈에 그리던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삶을 체험해 자아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