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중학교 필독 도서들로부터 세상은 넓고 할 일을 많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와 진달래가 온 산을 뒤덮는 것을 보며 앞으로 이 경관을 볼 날이 3번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 앞 목련나무에 피는 눈꽃도 기껏해야 10번 정도만 더 볼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한 이후,
아마 그 순간부터 유한한 세상에 대한 서글픔 속에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자각했을지 모른다. 우울증은 달콤해서 할 일을 미뤄도, 성적이 안 좋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달콤한 우울증 속에 나를 놓아버리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공황장애를 맞이하게 되었다.
내면의 우울증이 처음으로 밖으로 토해져 나온 것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대학교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꽤 상담을 오래 진행하던 중 상담 선생님이 약속 상담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적이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지각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지만 선생님은 달리 생각하셨다. 상대방이 지각하면 짜증이라던지 어떠한 감정적 동요가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 안의 감정을 처음으로 마주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끄집어낸 감정은 분노였다.
슬프게도 분노를 먼저 꺼낸 나머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들과 트러블이 생겼고 분노는 차근히 내 인생을 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사회로 나가 이런저런 일을 겪고 이번 생에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자 시베리아 열차에 던졌다. 운이 좋게 혹은 당연하게 살아 돌아왔고 삶에 재미가 붙은 건 아니었지만 이런 여행을 더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살리고자 한국이 아닌 다른 곳도 이렇게 지옥일까 싶어 도전한 곳이 캐나다였다.
그리고 30년 인생에서 워킹홀리데이라는 가장 안정적이면서 인생을 바꿀만한 충격의 도전은 성공이었다. 캐나다는 분노의 감정만 꺼낼 수 없었다. 인종차별의 벽과 언어 사용의 부자유로 인하여 분노를 제재할 수 있었다. 또한 내 안의 감정은 분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매일 느끼다 보니 자연에 대한 경외감, 같이 일한 친구들에게 도움받아 생겼던 감사함 등 다양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곳에서 배운 여러 감정은 분노가 훅 치밀어 오를 때 상쇄시켜준다. 분노만 느끼기에 다른 감정들을 느끼는 편이 더 이롭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끝까지 가보았다는 삶에 대한 투쟁이 삶에 대한 열망을 다시 찾게 해 주었고 지금은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다. 지금 이 안정된 삶이 나만 노력해서 이룬 게 아니라 주윗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을 알게 되니 그들에게 더욱 잘하려 하고, 직장 내에서는 이제 내 자리를 잡고 싶어 캐리어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고 주어진 업무를 최대한 완벽하게 수행하려고 끝없이 노력한다.
달리 생각하면 캐나다라는 도피처를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 삶에 대해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현재가 가진 무게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다녀온 지 1년 반이 지난 후, 그곳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비록 코로나뿐 아니더라도 느끼고 있고 그곳에서 배웠던 많은 것들을 지금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훨씬 더 나의 성장에 이롭다는 것을 이번에 글로 소회를 풀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의 삶에 적용 중인 건 다음과 같다.
캐나다에서 만난 친구와 연락하면서 매달 한 권씩의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북클럽을 진행 중이다.
스탠리 파크를 돌았듯이 동네 산책이라도 하면서 꾸준히 운동하는 중이다. 사실 캐나다 다녀온 후, 당뇨 바로 직전이라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다. 아마 공짜라고 맘껏 먹은 스타벅스의 음료들 때문일 것이다. 이 덕분에 항상 당과 탄수화물을 조절하는 좋은 식습관이 자리 잡긴 했다.
퇴근 후 영어 공부를 하고, 운동하고 삶의 루틴이 생겼다.
그리고 인생의 약 3분의 1의 세월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